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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차말줄 일병 유해 가족품으로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7 18:18

수정 2024.04.17 18:18

1950년 아내·아이 두고 자원입대
횡성·포동리 전투서 34세에 전사
아들 "현충원 다니며 울분 달래"
유해발굴 신원확인 229명 결실
고(故) 차말줄 일병(왼쪽 아래)의 생전 모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고(故) 차말줄 일병(왼쪽 아래)의 생전 모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6·25 참전’ 차말줄 일병 유해 가족품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04년 강원 횡성군 청일면 일대에서 발굴한 6·25전쟁 전사자 유해 신원이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한 고 차말줄 일병(사진)으로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이날 국유단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3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내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참전했던 고 차 일병이 74년 만에 가족 품에 돌아왔다. 이로써 군 당국이 2000년 4월 유해 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 신원을 확인한 6·25 전사자는 총 229명이 됐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단 소식에 아들 차성일씨는 "생애 동안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저 서울현충원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울분을 달래왔다"며 "아버지를 찾아준 소식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난다"고 감회를 밝혔다.

국유단은 2010년 9월 고인의 아들 차씨를 찾아 유전자검사를 했으나 이때는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이후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다시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부자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917년 3월 울산 중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차 일병은 정유회사에 근무하며 결혼해 슬하에 2남1녀를 뒀다.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중 인천상륙작전 다음 날인 1950년 9월 16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했다.

차 일병은 국군 제5사단 소속으로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참전했고 '가평, 청평, 춘천지구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맞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 참전 중 1951년 2월 8일 3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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