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민원 만능주의 시대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8 18:05

수정 2024.04.08 18:05

김태경 전국부 선임기자
김태경 전국부 선임기자
공무원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한 악성민원의 시대'가 열렸다. 이는 사실 최근 벌어진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악성민원은 존재했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 민원 아닌 민원을 이유로 당직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사례는 수없이 발생했다. 다만 공무원들이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 악성민원의 역사는 길고 가혹했다.

지난 3월 5일 경기 김포시청 9급 공무원 ㄱ씨가 자동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악성민원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18일에는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고, 같은 해 8월 16일에는 민원인의 고성을 듣고 쓰러진 경기 모 세무서 민원팀장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6월부터 민원 처리 담당자를 보호하기 위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시행됐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이런 조치들이 사후적 지원이지 악성민원을 줄일 수 있는 근본대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악성민원은 결국 공무를 사유화하고 업무방해를 하는 중범죄나 다름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정말 필요한 민원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습관성 민원도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고질적 요인이다. 당직 공무원은 밤늦게 걸려오는 습관성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당직 서기가 두렵다고 말한다. 더구나 민원 담당 공무원의 인력은 한정돼 있어 민원인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 민원이 해결이 안 됐다며 담당 공무원에게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 해당 공무원의 사기저하는 물론 인간적 자존감마저 철저히 무너뜨리는 부작용이 매번 발생한다.

민원인의 폭언·폭행·위협 등으로 인해 민원 처리 담당자의 정신적 스트레스, 우울증, 자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규정은 미비해 민원 처리 담당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성 공무원이 증가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초급 여성 공무원이 민원부서에 배치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경험도 많지 않은 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악성민원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보호할 안전요원 배치가 작년에 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됐지만 인력 확보와 예산문제 등으로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민원이 심각한 주민센터 등 현장에서는 안전요원 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지방자치단체는 늘 인력결손율이 10~15%가 발생하는데 적기에 충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민원에 따른 책임이 공무원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도 민원부서를 꺼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민원인 한 명이 종결된 민원에 대해 추가 민원을 제기하는 건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행정안전부 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7년 민원인 한 명이 종결된 민원에 대해 추가로 민원을 제기한 건수는 1.74건이었지만 2021년에는 6.61건이 발생, 약 3.8배 늘었다.

폭언·욕설 등 특이민원도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특이민원은 총 2만6685건으로 폭언·욕설이 88.0%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협박이 8.5%로 그 뒤를 이었다.

민원 처리 담당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사후약방문식 대책만 남발된다.
정부가 부랴부랴 정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민원인의 비합리적 고소·고발에 기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는 비율도 고작 2%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키는 민원인을 각급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목록화해 관리하고, 경험이 풍부하거나 지정된 민원심사관으로 하여금 전담 대응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ktit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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