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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기업의 고금리 빚 돌려막기

김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7 18:14

수정 2024.03.27 18:14

김현정 증권부 차장
김현정 증권부 차장
"월급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위에선) 자본시장 조달로 돈이 들어올 때까지 참으면 된다고 한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A기업의 이야기다. A기업은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도 받지 못했다. 자본시장에서 조달하는 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처지다.


대기업 계열사도 녹록지 않다. B기업은 신용등급은 우량한 수준이지만 업계 불황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위에서는) 돈이 들어올 때까지 '연구비 지원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총선 이후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경제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자본시장에서는 회사채 돌려막기, 전환사채(CB) 돌려막기, 기업공개(IPO)로 연명하려는 기업들이 상당수다. 이들은 고금리 정책이 지속되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들도 안심할 수 없다. 부실의 뇌관이 한 번 건드려지면 한두 달 사이 몇 단계씩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무등급 기업에서 나올 수 있다. 신용등급이 없는 기업들의 자금 상황은 재무제표만으로 가늠할 뿐이다.

최근 무등급 기업들의 사모채 발행이 늘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운영자금 마련보다는 차환이 압도적으로 많다. 투자자금으로 쓰기보다 과거 저금리 때 발행했던 회사채를 고금리로 차환하는 경우다.

고금리 빚 돌려막기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누가 오래 버티나' 하는 림보게임마저 연상케 한다. 자금조달력과 현금 확보능력이 줄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게임 참여자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에서 옥석 가리기를 하는 기준이 더 날카로워야 하는 이유다.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가늠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엔 아직 섣부르다.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예전의 저금리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들은 부채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개미들의 채권투자도 점검해 봐야 할 때다. 지난 2년 동안 개인들의 회사채 순매수 금액은 기관투자자와 비등해졌다. 고금리가 지속되고 채권가격의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채권 매력이 부각된 결과다.
올해 들어 개인이 사들인 회사채 규모는 2조6283억원어치(순매수 기준)로, 기관투자자(2조9328억원)와 비슷했다. '불나방' 같은 투자를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
금감원은 자본시장의 사각지대에서 돈을 쉽게 조달하려는 '거품'기업들에 대한 감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khj91@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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