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공급망 다변화·TSMC 지정학적 리스크… 삼성에 기회"[부활한 반도체, 격화된 칩워]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4 18:18

수정 2024.03.24 18:18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美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
"美 보조금 지급 차별 없을 것
프로젝트 규모·성격 따라 달라
대중국 반도체 제재 지속 전망"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美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美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

"공급망 다변화·TSMC 지정학적 리스크… 삼성에 기회"[부활한 반도체, 격화된 칩워]

"미국 정부로부터 수십억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외국 반도체 기업을 '미국 우선주의의 피해자'라고 보는 건 공감할 수 없다. 기업별로 미국 내 건설 중인 프로젝트의 규모, 성격에 따라 보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 대해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사진)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미 상무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관련 '자국 기업 밀어주기'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국적을 떠나 철저하게 미국 내 투자 기여도에 따라 보조금을 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만간 발표될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투자 지원과 관련, 인텔 등 자국기업과의 차별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밀러 교수는 오는 11월 미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
아울러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대만 TSMC의 파운드리 독점체제를 깨기 위해서는 첨단 공정의 수율(양품 비율) 개선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미, 투자 성격 따라 보조금 차등"

밀러 교수는 최근 반도체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미 칩스법 보조금에 대해 투자 규모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핵심 경합주인 애리조나를 찾아 자국 반도체업체 인텔에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85억달러(약 11조4410억원)의 보조금과 110억달러(약 14조8060억원) 규모의 금융 대출을 제공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당초 시장 예상치의 2배이자 삼성전자의 예상 보조금 60억달러(약 8조760억원)의 3배가 넘는다. 칩스법의 직접보조금 총예산이 527억달러(약 70조9342억원)임을 감안하면 인텔에 상당한 지원을 한 셈이다.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인텔이 칩스법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삼성전자와 TSMC가 미국 기업 몰아주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밀러 교수는 "미국에서 SK하이닉스는 (후공정인)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며, 삼성·TSMC·마이크론은 팹(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며 "각사가 짓는 팹마다 크기와 생산능력(캐파)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일부 회사는 팹 운영과 더불어 연구개발(R&D)도 함께 진행 중이고, 일부 회사는 생산만 준비 중"이라며 "보조금의 차이는 '미국 우선주의'보다는 사업의 다양성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美대선 상관없이 대중국 제재 유지"

11월 대선을 앞두고 밀러 교수는 당선 결과와 관계없이 현 정부의 반도체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영역에서 중국의 추격을 막고자 하는 데 컨센서스(합의)를 이뤘다"면서 "중국 반도체의 추격을 허용하는 것은 곧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 무기를 중국에 쥐여주는 꼴"이라고 했다. 특히 밀러 교수는 AI의 발달로 AI용 첨단 반도체가 상업용을 넘어 군사·첩보용으로 쓰일 수 있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수출제한 정책이 완화될 가능성을 극히 낮게 봤다.

밀러 교수는 현재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미국의 제재로 답보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하면서도, 중국 반도체의 기술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중국 정부는 2014년 중국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수십억달러의 보조금을 집행했고, 이를 통해 가시적인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면서 "특히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일부 제품 관련 기술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위협적인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밀러 교수는 "EUV 제재로 삼성전자와 TSMC가 2나노미터(1㎚=10억분의 1m)를 향해가는데 중국은 7나노에 머물러 있다"면서 "향후 EUV가 필요한 선단공정에 있어서 중국의 추격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TSMC 공급망 변화 파고들어야"

친미반중 성향 후보가 대만 총통선거에서 당선되는 등 최근 양안관계 긴장에 따른 공급망 다변화 흐름은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와 인텔에 호재라는 게 밀러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TSMC가 고객사들의 우려에 미국, 일본, 독일 등 생산 다변화에 나섰지만 선단공정 생산은 대만 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와 인텔은 수율 제고와 안정성을 확보해 TSMC의 기존 고객사들에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망 다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놓쳐서는 안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