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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진짜 선거는 지금부터다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0 18:10

수정 2024.03.20 18:10

선거구도 여러 차례 변해
심판·청산론 치우침 없어
여야 동일한 출발선 선 셈
노동일 주필
노동일 주필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17.15%p 차.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주효했지만 여당의 판단 착오도 한몫했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의 사면·복권 및 재공천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당헌·당규에 따라 후보를 안 내고 조용히 치르는 게 최선의 정무적 판단이었다. 용산의 뜻인지는 몰라도 여당이 앞장서 판을 키운 것은 분명 패착이었다.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만 선명해진 선거였다.
4월 총선은 '대선 연장전'으로 여당 참패가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보궐선거 패배 후 인요한 혁신위가 주목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했다. 반전은 김기현 대표 사퇴 후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법무부 장관 사임과 여당 비대위원장 취임은 그 자체가 논란거리였다. 장관 시절 야당 의원들과의 맞대결에서 보여준 강단만으로 정치권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운동권 특권 청산'을 일성으로 지난해 12월 시작된 한 위원장의 정치 행보는 가히 파죽지세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이 대표에 대한 한 위원장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다. 전국 순회와 법인카드 의혹 제기, 일대일 토론 제안 등 '여의도 문법'에 익숙한 기성정치인 뺨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위원장이 부각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엊그제(19일)까지 무려 21번이나 개최한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 내용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너무 많은 약속을 나열한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도'가 바뀐 것처럼 보였다. '한동훈 대 이재명'이 회자되면서 정권 심판론 자리를 야당 심판론이 차지했다. 2월부터 본격화된 양당의 공천 작업은 이런 분위기를 더 짙게 했다.

민주당 공천은 이재명 사당화, '친명횡재 비명횡사'로 요약된다. 친문세력 제거도 중요한 포인트다. '시스템 공천'은 비명들만 알아서 골라내는 신통한 '시스템'이었다. 박용진 경선 탈락은 비명횡사의 정점을 보여준다. 여당 참패론 대신 여당 압승론이 팽배했다. 국민의힘 170, 민주당 120석을 점치는 평론가도 나왔다.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이 대표가 선거 패배를 각오하고 사당화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공천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신중론을 폈다. 막말 등 작은 실수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우리 정치의 속성은 이미 숱하게 본 바 있다.

여당의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늦은 여당의 공천 잡음, 조국(혁)신당 출현, 용산과 여당의 엇박자 등이 원인이다. 이른바 조국신당은 어이없는 우리 정치현실을 반영한다. 2심에서 징역 2년의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대표를 비롯, 비례대표 앞 순위 10명 중 4명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고공행진이다. 반윤만 외치면 면죄부를 받는 것인지 믿기 어려운 초현실적 현상이다. 그렇더라도 여당에는 위협요인이다. 공천에 실망해서 투표를 포기했을 민주당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갈 유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총선 후보 등록일이다. 이제는 여야 누구도 압승을 자신하기 어려운 국면이 되었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이다. 맹목적 심판론도, 일방적 청산론도 바람직한 선거구도는 아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정국이 요동치면서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서는 것으로 정리된 셈이다. 진부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진짜 선거는 지금부터다. 한쪽이 압도하는 싱거운 싸움보다 팽팽한 승부가 긴장감을 준다. 여당은 대통령 부정평가와 정권심판론이 여전히 높은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물가와 의료라는 급소도 해결해야 한다. 계절적 요인도 알고 의료개혁도 지지하지만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국정운영 세력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오만하게 보이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심판론만을 믿고 독재 운운하며 대통령 탄핵, 임기단축 운운으로 일관하면 민심은 급변할 수 있다. 앞으로도 국면전환은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운 자세로 임하는 세력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당연하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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