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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토종 자동차 안방 점령… 해외車 '빅5' 무릎 꿇었다 [글로벌 리포트]

이석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7 19:34

수정 2024.03.17 19:42

합작 브랜드로 기술력 흡수한 중국
화웨이 '아이토'· 알리바바 '즈지'
IT업계 손잡고 독자 브랜드로 승부
배터리 등 탄탄한 공급망 등에 업고
EV 차량 전세계 보급 1위 '질주'

중국산 자동차 현지 점유율 56%
獨·日은 10%대… 현대차는 1%
결국 감산하거나 저가 경쟁 불사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 중국 베이징 왕징의 고급 쇼핑센터 카이더몰. 귀금속과 화장품, 여성 의류 매장 등과 함께 전기자동차(EV) 상설 전시매장이 나란히 있다. 1층 EV 전시매장에는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의 전기자동차(EV) 즈지 자동차 LS6와 LS7 등이 전시돼 있다.

17일 SAIC 매장에서 만난 추이자오잉 매니저는 "314마력부터 787마력까지 한번 충전으로 560㎞~702㎞까지 달릴 수 있는 여러 사양들을 선택할 수 있다"라며 특징을 설명했다. 가격도 21만9900위안(약 4064만원)부터 28만19만위안(5210만원)까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배터리 성능에 따라 성능과 가격이 큰 차이가 났다. 유리로 돼 있는 차체 지붕을 살피자 추이 매니저는 "우주선, 비행기 등에 사용되는 항공용 특수 유리"라고 말하면서 "알리바바 그룹이 차량의 스마트 제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자본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1층 대각선 편에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설비업체 화웨이 매장에도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진열돼 있었고 주말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타보고 매장 직원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이 여럿이 화웨이 핸드폰과 태블릿, 그리고 각종 통신 기기들을 사용해 보고 있었다.

화웨이 매장 건너편에는 상하이자동차와 알리바바 그룹이 협력해 만든 스마트형 EV 즈지의 모델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석우 특파원
화웨이 매장 건너편에는 상하이자동차와 알리바바 그룹이 협력해 만든 스마트형 EV 즈지의 모델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석우 특파원
■전자기기 매장에 들어온 화웨이 자동차

매장 한 가운데 있는 SUV 자동차 2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화웨이가 자동차 스타트업 세레스 그룹과 함께 개발한 신형 전기차 브랜드 아이토(AITO) M7였다.

양사가 함께 개발한 중대형 다목적 스포츠차(SUV) M7의 가격은 약 25만위안(약 4631만원)부터 판매된다고 매장 매너지 양쉬펑은 설명했다. 배터리 성능에 따라 가격은 34만 98위안(6469만원)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9월 공개된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차량(PHV)인 M7은 올해 1월에만 2만9998대가 판매, 누적 판매대수는 14만대를 넘어섰다. 화웨이가 치루이 자동차와 함께 만들어 지난해 말 출시한 룩시드도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토처럼 즈지 모델도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알리바바그룹, 장강하이테크 등과 3사 공동으로 만든 EV이다.

"통신전자회사들이 EV 제조와 판매까지 뛰어들고 있는 것이 중국 EV 업계의 특징"이라고 매장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화웨이의 브랜드 파워와 신뢰를 기반으로 카이더몰의 화웨이 매장처럼 기존의 핸드폰과 통신장비를 팔던 매장에서 자동차를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판매망과 애프터서비스에까지 뛰어든 셈이다.

추이 매니저에게 현대자동차에 대해 물어보니 "제네시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내연기관 차량은 별로 관심이 없어 아는 것이 많지는 않다"는 대답이 이내 돌아왔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충전 설비들이 비교적 잘 설치된 도시 지역에서는 이미 내연기관차량은 소비자들의 관심 밖에 있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될 정도였다. 백화점과 쇼핑 센터 1층 한복판에 전시되고 있는 EV는 소비자들에게 파고 드는 중국 내 자동차 시장의 변화된 물결을 보여준다.

중국 EV 등 신에너지 차량의 약진 속에서 지난 30년 동안 중국 내 자동차 시장을 선도해 온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은 입지가 좁아져 설 자리를 잃고 있다. EV를 앞세운 중국 토종 브랜드 자동차들의 급성장으로 중국 시장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17일 중국 베이징 왕징 카이더몰 1층에 위치한 화웨이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전시된 스마트형 전기자동차(EV)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석우 특파원
17일 중국 베이징 왕징 카이더몰 1층에 위치한 화웨이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전시된 스마트형 전기자동차(EV)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석우 특파원
■중국 브랜드 강세, 56% 점유

지난 14일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승용차 판매에서 중국 브랜드차의 점유율은 56%까지 높아졌다. 2013년 중국 시장에서 중국 자체 개발 차량, 토종 브랜드가 시장 점유율 40%를 돌파하더니 2022년도 49.9%까지 육박했다. 지난해에는 크게 늘어난 EV 판매에 힘입어 결국 50%를 거뜬히 넘어서서 60%를 바라보게 됐다.

이에 반해 중국 시장에서 '빅 5'로 불리던 독일·일본·미국·한국·프랑스계열 자동차의 몰락은 거의 처참한 수준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각각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20%를 넘었던 독일과 일본 자동차들의 점유율은 2022년 19.5%, 17.8%로 떨어졌다. 미국자동차와 한국현대차의 비율도 9.4%, 1.6%로, 프랑스차는 0.8%로 각각 추락했다. 국가별 승용차 브랜드 점유율이 2019년에 비해 현대차는 3.1%p, 독일은 6.4%p 각각 감소했다.

경험과 기술력이 부족했던 중국의 자동차업체들은 1990년대 해외 유수 자동차메이커들을 불러들여 지분 5대 5 합작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수익도 반반으로 나눴다. 중국에 진출한 모든 해외 브랜드는 독자를 허가 받지 못해서 중국 측과 합작으로 진출해서 사업을 해 왔다. '베이징현대', '상하이GM', '둥펑닛산'이라는 명칭이 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해외 메이커들의 기술력을 흡수한 중국 자동차메이커들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중국내 정보통신(IT) 업체 및 벤처들과 손을 잡고 EV 제조에서 약진하면서 중국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중국 측은 판매가 격감하고 있는 합작 사업보다 독자 브랜드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디젤과 가솔린 엔진 등 내연기관 차량의 수요가 추락하는 가운데, 수익을 절반밖에 가져갈 수 없는 합작 사업에는 관심을 덜 기울이면서 EV 차량 등 자체 브랜드 확산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수출을 포함한 중국의 신차 판매 대수는 2022년에 비해 12% 늘어난 3009만 4000대였다. 2위인 미국의 약 1.5배를 훨씬 넘는다. 그 가운데 EV 등 신에너지차의 비율은 5.9%p 증가한 31.6%였다.

시장 크기뿐 아니라 세계에서 EV가 가장 많이 보급됐다. 화웨이, 알리바바 같은 세계적인 통신정보업체들이 EV 등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스마트 자동차의 질주는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배터리점유율 1위인 닝더스다이(CATL)로 상징되는 배터리산업, 화웨이나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통신정보산업, 거기에 각종 유리, 철강, 원부자재 공급망 등이 받쳐주는 중국의 EV 등 신에너지 자동차의 질주는 공급 과잉이란 우려속에서도 속도를 더하고 있다.

비야디(BYD) 등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디젤 엔진 자동차를 주로 생산해 온 해외 자동차메이커들은 가격 경쟁에 나설 수 없는 처지에 빠져 버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자랑해 온 자동차왕국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철수나 감산을 계획하고 있다. EV 등 신에너지차 개발에서 중국 메이커들에게 뒤처진 것이 중국 시장에서 퇴조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일본의 미츠비시 자동차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자동차 생산 철수를 발표했다. 마쓰다도 중국에서 합작 사업의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카이더몰 1층 한복판의 귀금속 매장들 옆에 전시된 EV 즈지 모델 매장 앞을 소비자들이 지나고 있는 모습. 사진=이석우 특파원
카이더몰 1층 한복판의 귀금속 매장들 옆에 전시된 EV 즈지 모델 매장 앞을 소비자들이 지나고 있는 모습. 사진=이석우 특파원
■중국내 해외 자동차 공장들, 감산 또는 철수

닛산자동차는 중국내 자동차 생산능력을 최대 30%까지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닛산의 2023년 중국 생산량은 79만3000대로 2018년의 중국내 판매 대수 156만대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중국내 공장도 절반 정도만 가동되고 있다.

혼다도 중국의 생산능력을 20% 줄일 생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최근 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등 신에너지차에서 중국 자동차와 경쟁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중국 사업을 축소해 대신, 북미와 동남아시아 시장에 주력하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가 2017년 11억 5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중국 충칭에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지만, 약 6년 후인 지난해 12월 투자금의 4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매각을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나왔다. 폭스바겐도 전기차 시장을 잡기 위해 최근 중국에 50억 유로(약 7조2000억원) 상당의 투자를 결정한 것도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이다.

중국 소비자들의 가성비 높은 전기차 선호가 확산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의 자산 가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상하이 컨설팅업체 오토모빌리티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량은 1770만대를 기록했다. 이는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2017년에 비해 37%나 감소한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 "중국에서 전기차 인기가 급증하면서 향후 10년 동안 생산이 중단된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 '좀비 공장'이 수백개 쏟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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