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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파탄의 부정행위 위자료, 이대로 적절한가?[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상속·이혼']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9 20:40

수정 2024.03.09 21:48

“1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은 위자료”
”위자료의 불법예방 기능 고려해야“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법관으로 재직할 당시 2012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2년간 가사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담당했던 업무는 가사단독, 비송단독, 가사합의, 가사비송합의 사건과 가사신청 사건이었다. 즉 가사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다뤘다.

그 당시 부부 일방의 부정행위로 인해 혼인관계가 파탄됐고, 피해자인 부부 일방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배우자 및 부정행위의 상대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의 위자료는 일반적으로 부정행위 배우자의 경우 3000만원, 상대방의 경우 1500만원 정도였다. 여기에 부정행위의 기간 및 내용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가 적절히 가감됐다.

“1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은 위자료”

만약 부정행위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지 않은 경우(즉 가사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에는 위자료 액수가 보통 1000만원 내외였다.
그 후 10여년 간 민사·형사재판, 소년재판을 맡다가 2022년 2월부터 다시 가사재판을 맡게 되었는데 2012년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여전히 부정행위로 인한 혼인관계 파탄에 따른 위자료는 '3000만원/1500만원' 기준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0년이 지났으면 물가도 많이 올랐을 텐데 과연 이 정도의 위자료가 적정한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물론 위자료 액수에 대해 정해진 기준이나 답은 없다. 그리고 개별 사안마다 부정행위의 내용 및 기간, 부정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부정행위 당시 부부 관계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무작정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적절하다.

다만 현재 부정행위로 혼인 관계를 파탄시킨 사람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해지는 손해배상액수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물가가 오른 것도 사실이지만, 혼외정사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개인 사생활의 자유 보장 등으로 부정행위의 불법성은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주장을 한다.

그들은 이제 부정행위는 혼인을 유지하는 동안 이전보다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런 이벤트이므로 부정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도 그 만큼 줄어들었고, 따라서 부정행위로 인해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하더라도 위자료 액수를 이전보다 증액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수긍하기가 어렵다. 부정행위가 빈번해졌다고 해도 이것이 혼인관계를 파탄시키는 위법한 행위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부부 일방이 부정행위를 저질렀지만 다른 일방이 이를 용서해 혼인관계가 파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어떠한 부정행위로 인해 혼인관계까지 파탄됐다면 피해 당사자는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을 것이다. 정신적 고통은 무형적 손해이기 때문에 그 손해액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사망한 피해자에게 위자료가 인정되고 그 상속인들이 그 위자료 채권을 상속한다는 논리에 따른다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은 전통적인 손해산정 방식인 차액설이 적용될 수 없다.

”위자료의 불법예방 기능 고려해야“
따라서 위자료는 손해 전보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불법행위의 예방 및 제재라는 다른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가사재판 실무는 예전보다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나 인격권을 존중하는 추세이다. 오래 전에는 당사자 간의 통화 내역, 문자메시지 내역, 카톡 내역 등도 증거 신청을 통해 쉽게 확보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위와 같은 내역들을 보기 위한 증거 신청은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채택되지 않는다.

또한 카드 사용 내역 등을 알아보기 위한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신청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채택되지 않는다. 이러한 실무의 경향은 일응 타당한 면이 있긴 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닌데 일반 시민의 통화 내역, 카드사용 내역 등을 무작정 영장 없이 조회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재판 당사자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무의 경향으로 인해 은밀한 부정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더구나 간통죄가 없어진 이상 부정행위 현장을 경찰관과 같이 급습할 수도 없다.

어떤 회식 자리에서 법조인이 아닌 지인들이 “바람피우다 걸려도 2000만원에서 3000만원만 있으면 해결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지인들은 우수갯소리로 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가사재판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법관 출신 변호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상당히 듣기 불편한 질문이다. 빈번하게 일어나면서도 낮은 발견율을 보이는 부정행위라는 위법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위자료의 예방적·제재적 기능을 활용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위자료의 액수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10년 전 과거에 실무상 인정되는 위자료 액수보다는 훨씬 더 증액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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