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돈 때문에 마약 유통하는 20대 늘어…경제적 재활 도와야" [마약중독과 싸우는 사람들]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5 18:03

수정 2024.03.05 20:52

(10) 법무법인 진실 박진실 변호사
인터넷 통한 비대면 거래 늘면서
물건 옮기는 드랍퍼로 범죄 가담
대부분 고액 알바 개념으로 생각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 인식 못해
누구나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어
어릴때부터 교육받는게 가장 중요
범국가 관리 시스템 미흡한 상황
행정부 이외에 사법부도 힘보태야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 변호사 사진=서동일 기자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 변호사 사진=서동일 기자
"20대 마약류 사범 상당수는 경제적 빈곤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이다. 마약류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재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진실 사무실에서 만난 박진실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최근 마약류 사범의 주 연령대가 20대로 하향되면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로 경제적 빈곤을 꼽았다. 그는 "20대 마약류 사범 중에는 투약범죄가 아닌 유통범죄에 가담하는 이들이 많다"며 "돈이 필요한 20대들이 '고액알바'라는 유혹에 빠져 드랍퍼로서 활동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20대 사범, 범죄의식 희미해"

마약류 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월간 마약류 동향'에 따르면 검찰에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2만7611명으로 2022년(1만8395명)와 견줘 50.1% 증가했다. 특히 20대 마약류 사범 비중이 늘었다. 지난해 검찰에 검거된 마약류 사범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층은 20대(8368명)로 전체의 30.3%를 차지했다. 박 변호사 역시 이 같은 현상을 현장에서 체감한다.

그는 "최근 4~5년 전부터 20대 마약류 범죄의 의뢰인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들 상당수는 드랍퍼 같은 유통에 가담한 이들"이라며 "마약류 유통이 다변화되면서 마약류 유통사범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마약류 유통범죄에 가담하는 20대의 경우 범죄의식이 희미하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총책과 소비자가 대면으로 마약류를 거래했지만 요즘엔 SNS와 다크웹 등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됐다"면서 "그러다 보니 구매자가 비대면 주문을 하면 마약류를 약속된 장소에 가져다 놓는 드랍퍼가 많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드랍퍼로 가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물건을 특정 장소에 숨겨놓는 행위만 하다 보니 마약류 유통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식이 약하다"고 덧붙였다.

20대 마약류 사범에게 마약류 범죄에 대한 범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마약류 범죄 예방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가 현장에서 만난 범죄의식 없는 20대 마약류 사범 상당수는 기본적으로 마약류 범죄가 사회적으로 끼치는 악영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20대 마약류 사범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데다 마약류를 투약하거나 판매하는 지인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마약류 범죄가 지닌 사회적 악영향을 잘 모른다"며 "하루라도 어릴 때 학교에서 마약류 범죄에 대한 예방교육을 해 이들이 마약류 범죄의 중대함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범국가적 대응책 필요

박 변호사는 본업인 변호사 일 외에도 국무조정실 산하 마약류대책협의회 민간위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안전관리 심의위원회 위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겸임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마약류 범죄사건 전문 법조인인 셈이다. 그가 처음부터 마약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변호사 초기엔 이혼사건을 주로 맡았다. 그러던 중 국선변호사 생활 2년 차인 2004년에 서울중앙지법 형사제9부(현 마약전담재판부)를 담당하게 되면서 마약류 범죄사건을 수임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 사건 수임에서 벗어나 대학에서 마약류에 관해 파고들었다. 지난 2015년에 중앙대에서 '대마의 비(非)범죄화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여러 건의 대마사범을 변호했던 경험을 논문에 녹였다. 박 변호사의 논문은 대마사범을 장려하거나 비호하자는 취지가 아니었다. 그는 "가벼운 마약사범으로도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실형을 받게 되면 동종 범죄 수형자들로부터 더 많은 마약정보를 얻게 된다"고 지적했다.

마약사범이 구속돼 구치소에 갈 경우 이른바 동종 범죄자들을 이른바 '향방'으로 불리는 곳에 수감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수감자들이 다양한 마약사범을 알게 되고, 수사회피 노하우 등까지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마의 경우 마약류 범죄의 관문 역할을 한다는 이론에는 연구결과 논거가 다소 부족해 보였다"면서 "판매행위로 적발될 경우 필로폰은 판사가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택해 양형할 수 있지만 대마 판매의 경우 징역형으로만 최소형이 구성돼 있어 이런 법체계 역시 일부 손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미국선 법정이 치료·재활 병행"

박 변호사는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 차원에서 마약류 범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 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최근 들어서 법 개정을 통해 마약류대책협의회를 법적 기구로 격상됐고, 5년마다 한 번씩 마약류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며 "과거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사항이었는데 수용되지 않다가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에서 마약류 관리에 힘쓰는 모습이 보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박 변호사는 꼬집었다. 당장 마약류대책협의회에 행정부만 참석한다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박 변호사는 "국가 차원에서 마약류를 관리하는 것이라면 행정부와 함께 사법부도 주요 플레이어로서 나서면서 정부 부처와 협업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의 경우 약물 법정을 운영해 마약류 사범에 대한 치료·재활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쉽게 마약사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평온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어느 순간 마약에 빠져드는 계기가 생길 수 있다"면서 "예방이 최선이지만 마약류 사범들을 처벌할 때 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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