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번 생에 내집마련? 완전 망했죠" 청년들의 '깊은 한숨'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⑤]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1 07:21

수정 2024.02.01 14:53

<⑤'영끌'이거나 '집포'거나, MZ들의 비애>
직장인이 월급 모아 서울 집 사려면 '26년'
'넘사벽' 분양가에 '청약통장' 무용론까지
월세 전전하는 청년들 '주거 빈곤층' 전락
전문가 "청년이 공감할 정책 나와야" 제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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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것 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파이낸셜뉴스는 신년 기획으로 일상 뒷편에 숨겨진 문제들을 연속 보도합니다. 이는 사회에 전하는 일종의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1. "내 집이 있다는 것은 '이번 생은 성공했다'라는 말이 있어요." (20대 후반 회사원 A씨, 미혼)

#2. "전 지금 월세 살고 있는데, 집값은 계속 오르고 다시 본가에 가기는 너무 죄송하고…'내 집 마련' 정책 지원 받으려면 일단 결혼부터 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그럼 또 돈 들고…진짜 집 구하기 되게 힘들다,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드냐, 이런 분위기가 많죠." (30대 중반 직장인 B씨, 미혼)

청년 대다수가 ‘내 집 마련’을 원하지만, 소득만으로 집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청년이 많다. 월급을 안 쓰고 다 모아도 '26년'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다 보니 결국 ‘내 집 마련’을 하는 과정 자체가 고단한 악순환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청년의 거주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정책을 개발, 추진하고 있지만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월급 안 쓰고 26년 모아야 집 살 수 있는 시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하 한은) 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까지 청년층의 '가계대출 보유 차주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62%로, 연봉의 2.6배에 달하는 대출을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2022년 6월~2023년 7월간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취급액 현황'자료에서도 청년층의 대출은 1년 새 133조8093늘었는데,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75조4604억원 증가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볼 때 청년들 사이에서는 월급 등 소득만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은 거의 없다고 한다. 30대 중반 회사원 최 모씨는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라면서 “이런 얘기에는 상실감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저 청년들이 집을 살 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많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 씨의 푸념과 같이 예컨대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산다고 가정하면 몇 년이 걸릴까. 한은 진단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추세적으로 오른 주택가격이 근래 들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집값은 고평가 됐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한은이 지난해 9월 12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주요 참고 자료에 눔베오(NUMBEO) 통계를 인용해 담은 주택 가격의 적정성을 나타내는 주요국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가계 순가처분소득 대비 중위 사이즈(90제곱미터) 아파트 가격)을 보면, 우리나라(서울)는 2023년 기준 26배로 파악됐다.

이는 직장인이 월급을 26년간 아끼고 모아야 서울에 겨우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관련해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2분기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월 383만1000원이다. 해당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등을 받는다면 내 집 마련 기간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해당 지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비교 대상 107개국(중위값 11.9배) 중 10국에 불과하다.

다른 국가는 시리아(86.7배), 가나(78.6배), 홍콩(44.9배), 스리랑카(40.8배), 중국(34.6배), 네팔(32.8배), 캄보디아(32.5배), 필리핀(30.1배), 나이지리아(28.2배), 에티오피아(26.4배) 등이다.

관련해 한은은 보고서에서 “주택가격이 2020년 3월부터 빠르게 상승하다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며 지난해 8월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다”면서도 “주택가격이 소득과 괴리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기초 경제여건 등과 비교해 볼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과거 사례에 비춰 볼 때 국내 금융불균형 누증에는 부동산 부문이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은 긴 시계에서 일관되게 수립돼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청약당첨이요? 돈이 있어야 집에 들어가죠”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이런 가운데 아예 청약통장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청약통장을 보유한 20·30대 청년 10명 중 4명은 주택청약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약통장 유무보다는 새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높게 책정돼서 집을 못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인데, 결국 분양가격이 최대 청약 허들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30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총 2703만8994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12월 말(2638만1295명)과 비교하면 76만7773명 감소했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2년 6월 말(2703만1911명) 최고치를 찍은 뒤 18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정보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다방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20·30대 3103명을 대상으로 주택 청약제도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578명 가운데 1188명(75.3%)이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는 주된 목적은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86.4%)이었다. ‘저축·예금 통장 겸용’(9.4%)과 ‘투자 목적을 위한 청약 시도 용도’(4.1%)라고 답변한 응답자도 있었다. 다만 청약통장을 보유한 전체 응답자의 39.3%는 주택청약제도가 ‘실효성이 없다’고 여겼다. 청약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특별공급 확대’(30%)가 제시됐다.

월세 또 월세…“저는 주거 빈곤층입니다”

서울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렇다 보니 우울한 전망도 이어진다. 청년들은 주거비용이 지금도 지나치게 비싼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명 중 3명은 자신이 ‘주거 빈곤층’이라고 생각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안전망 체계 구축방안 연구’를 지난해 5월 15일 발표했다. 연구원은 2022년 6월13일부터 7월4일까지 19~34세 청년 403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향후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1.2%를 기록했다. 내 집 마련이 필요한 이유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가 80.7%로 가장 높았다. ‘자산 상승을 목적으로’가 9.3%, ‘결혼을 하기 위해서’가 6.0% 등으로 뒤를 이었다.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필요한 금액을 ‘3억~5억원 이내’(31.6%), ‘5억~10억원 이내’(29.4%) 등으로 추산했다.

청년 76.3%는 ‘소득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전혀 아니다’가 42.2%, ‘별로 그렇지 않다’가 34.1%로 나타났다. 현재 주택가격 수준에 대한 인식도 ‘높다’다 74.1%를 기록했고, ‘향후 5년 후 주택가격이 높아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56.6%로 절반을 넘겼다.

주택 매입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을 전부 끌어모으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에 대한 인식도 ‘향후 주택 마련을 못 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의 영향’이라는 응답이 37.1%로 가장 높았다. ‘무리한 자산 형성으로 가계의 위험 요소가 된다’가 25.8%, ‘자산 확보를 위해 실리적으로 필요하다’가 23.0%로 뒤를 이었다. 청년 31.3%는 자신을 ‘주거 빈곤층’이라고 인식했다.

청년들은 심층 면접 조사에서 집값 부담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남성은 “쌓아온 자산이 없는 시기인데 소득으로 감당이 안 되는 단계까지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또 고시원에 거주해봤다고 밝힌 비수도권 30대 남성은 “아무리 줄여도 줄일 수 없는, 말 그대로 몸 하나 뉠 공간이었다”며 “그러다 보면 집을 살 수 있는 돈도 모일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더라”라고 했다.

전문가들 “청년들이 느낄 수 있는 정책 개발해야”

청년 주거 및 소득 증감 현황 /연합뉴스
청년 주거 및 소득 증감 현황 /연합뉴스

연구진은 “청년들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격차를 크게 느끼고 있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영향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청년 임대주택 및 주거비 지원 확대와 거주 선호지역 중심 주택공급 확대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한 거시정책을 지속해서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파이낸셜뉴스와 통화에서 '청년 주거 정책'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월세 지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0~30대 등 청년들은 월세 거주 가구가 많다. 관련한 지원 정책은 아쉽다고 볼 수 있다.
일단 해당 관련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또 '내 집 마련' 과정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소득 격차 등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은 청년들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좀 더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월세 거주하는 청년들의 주거 정책을 더욱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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