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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김지운 감독 "끊임없이 킥킥댈 수 있는 영화"

연합뉴스

입력 2023.09.21 16:01

수정 2023.09.21 16:01

"현장서 직접 겪은 일 담아…'왜 나만 애쓰지' 생각할 때도" 김기영 유족과 합의 후 정상 개봉…"그 시대 모든 감독들의 모습"
'거미집' 김지운 감독 "끊임없이 킥킥댈 수 있는 영화"
"현장서 직접 겪은 일 담아…'왜 나만 애쓰지' 생각할 때도"
김기영 유족과 합의 후 정상 개봉…"그 시대 모든 감독들의 모습"

영화 '거미집' 연출한 김지운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거미집' 연출한 김지운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오는 27일 개봉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은 걸작을 만들기 위해 촬영을 마친 영화를 다시 찍는 1970년대 감독 김열(송강호 분)의 이야기다.

그의 예술가적 집착과 현장에서 느끼는 외로움, 책임감은 김 감독이 영화계에서 줄곧 느꼈을 감정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제가 (그간) 경험한 에피소드들과 감정들이 알게 모르게 김열의 결정적인 대사들에 들어가 있더라"라며 "(저뿐만 아니라 다른) 감독들의 내면도 반영됐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김열이 배우들 스케줄 문제와 제작사의 반대, 독재정권의 검열 등을 헤치고 파격적인 내용의 작품 '거미집'을 재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간절함에 사무친 김열은 이미 죽은 선배 감독의 환영을 보고는 "나는 준비가 다 됐는데 모두가 따라주질 않는다"고 토로하다가 자기는 아무래도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한탄한다.

김 감독은 자신 역시 같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왜 나만 이렇게 애를 쓸까? 같이 좋자고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지요. 이전에 박찬욱 감독도 촬영할 때면 '하루는 내가 천재 같고 하루는 내가 쓰레기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도 똑같아요. 일상에선 평정심을 잘 잃지 않는데, 현장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도 '거미집' 때는 대체로 천국이었어요. 하하."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30년 가까이 감독 생활을 해온 그가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왜 하필 지금 이 영화를 내놨는지에 대한 의문도 따른다.

김 감독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긍심을 느끼면서도 환멸 같은 게 들고 자기를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이 일이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인가, 처음 영화를 사랑했을 때 나는 어떤 질문을 했는가 하는 물음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미집'을 만들고 보니 저는 한평생 영화를 사랑했고, 이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거미집'은 감독들에게 힘을 잃지 말고 네가 믿고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 감독은 그동안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밀정'(2016) 등 자기 색깔이 뚜렷한 장르물을 주로 선보였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도 성공했다.

'거미집'도 특수한 집단의 이야기임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김 감독은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한국 영화의 체질이 개선되고 (위기를 넘는)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도 말했다.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은 상업영화로 성공하지 못할 요소들이 여러 개 있었지만 결국 흥행했어요. 그 당시에 이런 작품을 기다렸다가 환호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거미집'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소비층을 넓혀가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제가 계속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거미집'의 또 다른 매력은 코믹함이다. 배우 간 앙상블이 빚어내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극중극이 내내 웃음을 유발한다.

김 감독은 "끊임없이 킥킥댈 수 있는 영화"라면서 "두세번을 보더라도 재밌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 이면에는 배우 송강호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특유의 리듬감을 살린 대사로 웃음의 중심축을 잡는다.

김 감독은 "송강호 씨는 웃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페이소스를 만들어낸다"며 "제게는 페르소나 그 이상의 배우이고 모든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고 극찬했다.

두 사람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약 15년 만인 지난 5월 '거미집'으로 나란히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무대를 밟았다. 현지 시사회 당시 10분 가까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김 감독은 "'놈놈놈' 때가 두 번째 초청이라 앞으로 칸에 자주 오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15년이 됐더라"면서 "'거미집'이 올해 초청작 중 가장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 중 하나긴 했지만 울컥하진 않았다. 원래 눈가가 촉촉한 편"이라며 웃었다.

이 영화는 고(故) 김기영 감독의 유족이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자칫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일부 장면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김열의 모습이 김기영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였지만, 최근 제작사와 유족이 합의해 정상 개봉하게 됐다.

김 감독은 "김기영 감독님은 제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 감독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는 분"이라면서 "유족들을 뵙고 존경심에 관해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열은 김기영 감독님 한 분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 그 시대 영화감독 모두를 녹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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