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미·중 패권전쟁’ 불똥 튄 반도체… 삼성·SK, 비상 시나리오 가동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9 17:36

수정 2020.05.19 17:36

화웨이 공급처 차단 나선 美
TSMC, 美 제재로 수주 중단
中도 자국 SMIC 키우기 나서
최악 대비하는 국내 업체
13조 달하는 거래처 잃을 판
메모리로 확대땐 타격 심각
【 베이징·서울=정지우 특파원 김규태 기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 불똥이 반도체 업계로 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국내 반도체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제재가 비메모리 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직접적 영향은 적을 수 있지만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에 타격을 줄 경우 우리 기업에도 파장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관련 업체는 이미 시나리오별 대응 속도전에 들어갔다.

1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통신장비·휴대폰 생산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공식화된 이후 반도체 시장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공정에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 등의 제품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제재가 오는 9월부터 본격 발동되면 반도체 거래에서 미국의 허가는 필수다.


대만 TSMC는 이를 의식해 미국의 제재 발표 며칠 만에 화웨이로부터의 신규 수주를 중단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복수 소식통의 말을 인용, "TSMC가 이미 수주한 물량은 오는 9월 중순까지 정상적으로 출하할 수 있지만 이후엔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며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중앙처리장치(CPU)나 5G기지국 전용 등 자체설계 반도체 제품 제조를 TSMC에 맡겨 왔다. TSMC의 전체 매출 중 화웨이와 거래비중은 10%에 달한다.

또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약 14조7600억원)를 투자해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위스콘신주에 이어 두 번째다. 미국의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 전략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화웨이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스마트폰 생산 자체를 멈춰야 할 상황까지 직면한 것이다. 화웨이는 이에 따라 거래업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확산되기 전 물량 확보에 나섰다. 대만 경제일보는 "화웨이가 계열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TSMC에 7억달러(약 8623억원) 규모의 물량을 서둘러 발주했다"고 밝혔다. 다만 TSMC가 화웨이 계열사의 발주를 수용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에 보복조치를 천명했던 중국 정부도 마음이 급하긴 마찬가지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 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인 중신궈지(SMIC)에 22억5000만달러(약 2조7700억원)를 몰아주는 방식을 곧바로 추진했다.

중국은 이와 함께 미국과 반도체 갈등을 '기술냉전'으로 규정하고 장기전에 들어가는 전략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SMIC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것 역시 미국 의존도를 낮춰 반도체 분야에서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삼성과 SK 등 국내 반도체 업계를 포함한 전자 업계는 시나리오별 대응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각각 8조원, 5조원가량의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각사 전체 매출의 3%, 18%로 미국의 제재 방침이 강화될 경우 양사는 10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시장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각사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방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미국의 제재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나오지 않고 있지만 메모리까지로 제재품목이 확대될 수 있는 등 변수가 많다"면서 "화웨이가 타격을 입을 경우 추가 공급처를 마련할 방안을 찾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전자부품 업체들도 당장 미미하지만 피해를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중 갈등으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차질이 빚어질 경우 관련 부품인 삼성전기의 MLCC와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 수요가 모두 줄어들 수 있어서다.

다만 화웨이의 생산량이 급감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비중만큼 샤오미 등 중국 내 다른 업체들의 완제품 생산을 위한 부품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피해가 적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또 반도체 굴기를 꿈꾸는 중국이 미국기술과 결별한 뒤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 더욱 우호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은 호재 중 하나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산시성의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말한 것은 단순 현지점검 차원이지만, 일부에선 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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