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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성곽도시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6 17:05

수정 2020.04.06 17:05

각국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바리케이드를 높이자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스테디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이 대열에 섰다. 즉 "각 정부가 자신들만 살고자 다른 국가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로 '세계적 디스토피아' 도래 가능성을 점쳤다. 경제·공급망의 특성을 감안할 때 '글로벌 연대' 없는 고립은 파국을 부른다는 경고였다.

국제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하라리의 견해에 장단을 맞췄다. 5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는 그 이전과 전혀 다를 것이라며 '자유 세계의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전제적 통치자가 지배하던 '성곽도시'(walled city)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고도 했다.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한 번영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가 계몽주의 이전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걱정인 셈이다.

키신저의 말마따나 '성곽도시' 출현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세 서양의 자급자족식 장원이나 동양 각국이 외적을 막으려 쌓은 성을 떠올리면 그렇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도 근대화로 농성(籠城) 체제의 시효가 끝났다고 지적했다. 즉 "과거엔 대도시가 외부 위험으로부터 안전판이었지만, 공중전으로 이젠 그 속 시민이 인질이 돼버렸다"면서….

지금은 재화와 인력이 하루 만에 이동하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여행과 이주가 어려워지고,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마비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실업 쓰나미가 밀어닥칠 참이다.
만일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에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공장을 모국으로 속속 이전하는 상황까지 이어진다면? '성곽도시' 도래라는 불길한 미래가 현실화되는 꼴일 게다. 이런 치명적 사태를 막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석학들의 권고대로 세계 각국이 당장의 감염병 차단 노력과 함께 '글로벌 공조'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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