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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유동룡 건축상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3 17:57

수정 2020.02.23 17:57

건축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는 관람객이 늘고 있다. 땅 위에 지문을 남기는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건축가의 삶도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안도 타타오'에 이어 올해는 '마리오 보타-영혼을 위한 건축'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국내에 건축영화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은 정다운 감독의 2019년작 '이타미 준의 바다'가 아니었을까. 이타미 준은 일본식 이름이고 본명은 유동룡(庾東龍)이다. 귀화를 거부했다. 한국에서도 희귀 성씨인 무송 유(庾)씨는 일본에선 쓰이지 않는 한자여서 부득불 일본 이름을 만들었다.
평생 처음 비행기를 탄 오사카의 이타미(伊丹)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고, 깊은 교분이 있던 작곡가 길옥윤 (吉屋潤·요시다 준)의 윤(潤·준)을 땄다. 딸 유이화는 아버지에 이어 현해탄을 오가는 건축가이다.

한국에서는 이타미 준으로, 일본에선 유동룡으로 불린 경계인이었다.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가진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라는 첫 개인전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2005년 프랑스 예술훈장 슈발리에와 레지옹도뇌르 훈장, 2006년 한국의 김수근 건축상, 2010년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 방주교회를 '제2의 고향' 제주에 남겼다. 서울 인사동의 학고재 갤러리도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의 명예가 회복됐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설치된 경주타워의 설계저작권을 놓고 12년간 이어진 지루한 디자인 표절 다툼을 마무리짓는 현판식이 최근 열렸기 때문이다. 경주타워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 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 넣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타워 앞 안내판에는 원작자 유동룡(이타미 준)이 명시됐다.
서거 10주년을 앞두고 '이타미 준 건축상'이 제정된다고 한다. 이타미 준은 알지만 유동룡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많이 늦었지만 '유동룡 건축상'이라고 본명을 붙일 때가 됐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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