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중국내 한국 교민들이 침묵하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0 17:27 수정 : 2020.02.20 19:21
중국 베이징에서 3년간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지난 1월 초 한국 본사로 복귀했다. 1주일도 안돼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지인들은 아버지 임종을 가까이서 지켜본 데다 코로나19를 피했다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들 한다.
나는 운이 좋지만 중국에 남아 있는 교민들은 운이 정말 안 좋다. 무심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한쪽이 시리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베이징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 몇 분에게 연락해 한국에서 도움받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없다"였다.

이유는 두 가지. 일단 기물파손 등 물적 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992년 4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촉발된 LA폭동 당시 엄청난 재산상 피해를 봤던 재미 한인사회의 처지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 도움을 받더라도 심적으로 부담스럽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 내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대중국 관계에 대한 찬반 양론 때문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마저 마치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비쳐 본국의 도움이 오히려 퍼주기 논란으로 비화될까 우려하는 눈치다. 흉금을 터놓고 3년을 동고동락해온 사이인데도 현장을 벗어나니 교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한참 못 미쳤다.

베이징 한인타운인 왕징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최근 한국에 들러 식당문을 닫았다고 털어놨다. 왕징바닥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식당 매출은 예년에 비해 95%가 줄었다.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오던 중소기업들은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참 고달프고 힘든 여정이다. 경영의 성과에 미치는 요인으로 통상 경영자(리더십), 자원, 환경을 꼽는다. 중국에서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환경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경영의 주체가 제아무리 현지 환경을 파악하고 준비하더라도 불가항력적 사태에 직면하면 속수무책이다. 2017년 본격 촉발된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그랬고 이번 코로나19도 그렇다. 약 3년에 걸친 중국의 사드보복을 어렵게 극복하고 올해부터 해뜰 날을 기대했던 교민들이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또 맞으며 다리가 휘청거리게 생겼다.

코로나19 불길이 잡혀도 후유증은 몇 개월 더 간다.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입게 될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상상할 수 없다. 불가항력적인 환경 리스크에 직면한 한국 교민과 현지 기업들을 적극 지원해줘야 하는 이유다.

당장 중국 내 한국 중소기업들의 '야반도주'가 재연될지 우려된다.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 직후 중국에서 한국기업들의 '야반도주'가 비난을 받았다. 인건비 상승과 경쟁력 약화 탓에 야반도주를 택한 기업들이 비난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환경 리스크에 직면한 가운데 외국기업의 법인 청산을 어렵게 만들어놓은 중국 법 때문에 야반도주라는 불법을 선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탓에 경영은 스톱됐지만 임금 삭감이나 미지급은 불법이다. 환경구조상 한계상황에 직면한 기업들의 처지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겠다. 모든 정책수단의 첫 단계는 현장의 경청에서 시작된다. 지금이라도 중국 교민들과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포괄적 정책수단을 다시 짤 때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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