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취약 지적 없이 임시시설 확인만, '길병원 탈의실' 소방당국 부실 대응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18 12:21 수정 : 2020.01.18 15:15

지하주차장·해부실습실 탈의실 논란 길병원
소방당국 14일 점검결과 이례적 발표
권한 넘어 '임시시설' 확인, 안전문제 언급 없어

[파이낸셜뉴스] 응급실 간호사들에게 지하주차장 구석 공간을 탈의실로 쓰게 해 물의를 빚은 가천대학교 길병원(원장 김양우)에 관할 소방서가 점검을 나갔지만 특별한 조치 없이 돌아와 논란이 예상된다. 출동 이후 소방청이 병원 측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자료까지 발행한 점도 이례적이다.

소방청은 지난 14일 ‘길병원 지하주차장 탈의실은 임시시설로 확인’이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11일 단독 보도한 ‘길병원 간호사는 지하주차장에서 옷을 입는다’에 대한 후속조치다.

소방청이 지난 14일 낸 설명자료 사진. 소방청이 촬영한 이 사진에서 문제가 됐던 유일한 출구를 가로막은 사물함이 사라진 상태다. 소방청 제공.

해당 보도는 길병원이 지하 3층 주차장 구석 등 부적절한 공간에 응급실 간호사의 탈의실을 만들어 운영한 사실을 지적했다. 본래 승강기홀로 만들어진 공간을 탈의실로 전용하고, 유일한 출구 앞에 사물함을 배치해 비상시 탈출로를 막은 점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관할인 인천남동소방서가 현장을 확인한 결과 ‘소방법령 위반사항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소방청은 이 문건에서 ‘탈의실로 사용된 공간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탈의실을 지하 1층으로 통합 이전하는 과정에서 임시로 운영하는 중이었다’며 ‘임시탈의실은 피난통로와는 무관한 장소로 출구가 폐쇄되거나 물건적치로 인한 피난장애요인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탈의실의 유일한 출구를 막아놓은 사물함이 옮겨진 뒤 해당 공간에 방문하고도 법 위반 사실이 없다고 확인한 사실, 임시탈의실인지 여부에 논란이 있음에도 공공기관인 소방청이 자의로 이를 판단해 공표했다는 사실이다.

길병원이 운영했던 응급실 간호사 탈의실 입구. 유일한 출입문 절반 이상을 사물함이 막고 있어 이동에 불편이 있었다. 관할 소방서 관계자가 촬영한 사진에선 해당 사물함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김성호 기자

■사물함 빠진 뒤 현장확인 '문제없다' 발표
해당 공간은 지하3층 주차장 한 구석에 딸린 곳으로, 승강기를 기다리는 승강기전실에 해당한다. 병원 측은 이 공간을 탈의실로 운영하기 위해 승강기를 정지시킨 채 해당 공간에 60여개의 사물함을 가득 채워 넣었다. 정지된 승강기는 입구가 사물함으로 가로막혀, 유일한 출구는 전면 출입문뿐이다.

기자가 지난 보도에 앞서 이 공간을 방문했을 당시, 출구 절반 이상을 사물함이 막고 있어 비상시 탈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였다. 소방청에 문의한 결과 해당 공간이 비상구일 경우 위법으로 볼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비좁은 데다 60여개의 사물함이 빽빽하게 들어찬 혼잡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유일한 출입문을 사물함이 막고 있어 막대한 희생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다. 1999년 인천시 인현동 호프집 화재, 2014년 담양 펜션 바비큐장 화재, 2019년 김포 요양병원 화재 등 수많은 참사가 통로가 물건 적치 등으로 막혀있어 피해가 커진 점을 고려하면 해당 공간이 화재 등 비상사태에 취약했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문을 막은 사물함을 병원 측이 옮긴 뒤에야 현장을 확인했음에도 별다른 조사 없이 현행법을 어긴 사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공표했다.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지만 피난장애요인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유일한 탈출로를 사물함으로 막아놓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지적은 한 마디도 없었다. 해당 공간이 별도의 비상구를 마련해야 하는 규제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도 유일한 통로를 통행에 지장이 있을 만큼 막아놓은 사실을 소방당국이 충실히 확인하지도 지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길병원이 운영했던 응급실 간호사 탈의실 내부. 좁은 공간에 출구가 하나 뿐이고 이마저 사물함으로 막혀 있어 이용자들의 원성이 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가천대길병원지부 제공.

■병원 관계자 말만 듣고 '임시시설' 확인
해당 시설을 임시로 볼 만한 분명한 근거가 없음에도 병원 측 주장만을 듣고 ‘임시시설로 확인’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발행한 점 역시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소방청은 해당 공간의 법 위반 여부를 따질 권한이 있을 뿐이지만, 해당 자료 제목은 임시시설 여부를 확인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가천대길병원지부는 해당 공간이 임시시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특정 공간을 임시시설이라 하려면 △해당 공간이 임시라는 사실을 고지했거나 △향후 옮길 공간이 특정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물론이고 주차장탈의실을 쓰던 간호사들도 그곳이 임시시설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기사가 나가고 나서 주말에 교수들이랑 공간조정위원회 사람들이 출근해 다음 옮길 장소를 부랴부랴 보고 다녔는데 어떻게 임시시설인가”하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길병원 관계자는 “모든 걸 세세하게 노조한테 말해줘야 하느냐”며 “두 달 정도만 쓰려고 했고 그 동안에 여러 공간을 살펴보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말동안 병원 관계자들이 옮길 장소를 보고 다닌 것에 대해서도 “원장님이 임시라도 너무했다고 빨리 옮기라고 하셨는데 뉴스가 나오면서 난리가 나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 병원 내부적으로는 공간을 옮기려고 계획해놓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한편 길병원은 본지 보도 이후 원장 명의로 유감을 표명하고 물의를 빚은 지하주차장 구석 탈의실을 폐쇄했다. 현재 응급실 간호사들은 같은 건물 지하 1층 새 공간에 있는 탈의실을 사용하고 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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