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무심코 툭.. 하수구 빗물받이 들여다보니 담배꽁초 '가득' [당신의 양심]

이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2 10:30

수정 2019.11.02 10:29

장마철 역류·해양오염 주범, 청소에만 매년 수십억 들어
[파이낸셜뉴스] ※편집자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당신의 '양심'은 어디쯤에 있나요?

담배꽁초로 가득한 여의도의 한 골목길 빗물받이 / 사진=이혜진 기자
담배꽁초로 가득한 여의도의 한 골목길 빗물받이 / 사진=이혜진 기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골목길,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강남대로 안쪽으로 형성된 이 '흡연 존'에는 매시간 수많은 흡연자들이 몰려듭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자연스레 숨을 참거나 코를 막게 되는데요. 사실 담배 냄새만큼이나 반갑지 않은 것들이 있으니, 바로 바닥에 지저분하게 버려진 담배꽁초들입니다.

이 담배꽁초들은 거리의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하수구 빗물받이까지 막아버리는 '골칫덩이'입니다. 길바닥의 담배꽁초야 쓸어서 버리면 된다지만, 빗물받이 안쪽으로 버려진 꽁초들은 마음먹고 빼내지 않는 이상 청소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 빗물받이마다 가득 찬 담배꽁초.. 장마철 역류·해양오염 주범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위치한 빗물받이들을 살펴봤습니다. 빗물받이 하나당 적게는 10개, 많게는 30~40개 가량의 꽁초들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강남역까지 700m 정도를 따라 내려가며 확인한 빗물받이들의 상태는 대부분 이와 비슷했습니다. 보통의 빗물받이보다 더 깊게 만들어진 곳에서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꽁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좌)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에 설치된 담배꽁초 수거함 (우) 수거함 근처 바닥에 버려진 꽁초들 / 사진=이혜진 기자
(좌)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에 설치된 담배꽁초 수거함 (우) 수거함 근처 바닥에 버려진 꽁초들 / 사진=이혜진 기자

강남구는 지난 5월 강남역과 코엑스, 선릉역 인근에 담배꽁초 전용 휴지통을 시범 설치했습니다.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 골목에는 3~4개의 '담배꽁초 수거함'이 설치돼 있었지만 이곳 역시 다른 장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근 골목에서 흡연을 하던 남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꽁초를 비벼 끈 뒤 빗물받이 속으로 슬쩍 밀어 넣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흡연자들이 자주 모여드는 여의도의 한 골목길과 이 길에 위치한 빗물받이의 상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닥에는 방금 버린 꽁초들이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빗물받이의 틈마다 누군가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들이 가득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하수구 빗물받이에 무단투기된 담배꽁초는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꼽힙니다.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진 담배 필터는 완전히 분해되는데만 10년 정도가 소요됩니다. 버려진 담배꽁초의 필터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들은 하수도를 따라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이 유해 물질은 해양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바닷속 물고기의 몸속에 쌓이고, 물고기를 잡아먹는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빗물받이 속 꽁초들은 장마철 빗물 역류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빗물받이는 도로면의 빗물을 하수관으로 흘려보내 침수를 예방하는 시설입니다. 이곳에 담배꽁초 등의 이물질이 끼어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빗물이 역류하게 됩니다. 서울시는 관내 약 48만 개의 빗물받이 청소를 위해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 "제대로 버리고 싶어도 쓰레기통을 찾기 쉽지 않아요"
이처럼 담배꽁초가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이유는 투기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흡연자 701명을 대상으로 '담배꽁초 처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2%(514명)이 담배꽁초를 한 번이라도 길거리 등에 버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담배꽁초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인식도 부족했습니다. 담배 필터 성분이 플라스틱이며, 해양 미세 플라스틱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6.5%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무작정 흡연자들만을 탓할 것은 아닙니다. 흡연자 최모(38·남)씨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버릴 곳이 마땅치 않으면 길거리나 하수구 구멍에 꽁초를 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다 피운 담배를 손에 들고 다니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버리고 싶지만 매번 쓰레기통을 찾기도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환경연합 조사에 따르면 담배꽁초를 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꽁초를 판매점에 반환한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이에 동참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는 86%에 달했습니다. 흡연자들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과태료 등을 물리는 법적 조치만 취할 것이 아니라 담배꽁초 수거함을 더 많이 설치하고 반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서울환경연합은 조사 결과와 함께 "담배 회사에 담배꽁초 수거함 설치, 재활용 방식 도입 등 다양한 요구와 함께 중앙정부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품목에 담배를 포함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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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fnnews.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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