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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반도체와 다극체제 시대의 국가전략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10 19:14

수정 2024.04.10 19:14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며칠 전 삼성전자가 1·4분기 실적으로 전년동기 대비 약 931.3% 증가한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반도체 경기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음이 실적으로 확인된 터라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종은 많은 개인 주식투자자들이 한번쯤은 보유하는 주식이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어느 업종보다도 대중의 관심을 더 받아 왔다.

또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전체 수출 중 반도체 비중이 약 20%나 되므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곧 전체 경기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반도체를 보는 관점은 대표 수출품으로서 '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지난 수십년간 형성되어 왔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경제적 가치'에 더하여 반도체 산업이 지닌 '전략적 가치'가 주목받으며 주요국은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위상을 격상시켜 막대한 국가적 투자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 대표적 주자가 미국이다.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미국은 자유무역주의 전파자로서 다른 국가들의 보호주의적 산업정책을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세계 반도체 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약 40%를 차지하면서도 생산능력이 없는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그리고 중국의 대체지로 부상한 인도 등도 미국에 뒤질세라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약속하면서 반도체 기업 유치에 나섰다. 이들 나라의 반도체 보조금 규모는 발표된 액수를 보면 기본적으로 수십조원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원은 세액공제에 더하여 1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지원에 그치고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제정하여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강한 지원 의지를 표명한 데 비해 지원 규모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경제이론적으로 보면 자국의 비교우위를 무시하고 다수의 국가들이 동일한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자원배분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끝나고 미국 일극(uni-polar)체제 시대가 형성되면서 전략경쟁의 필요성이 사라지자 경제이론이 권하는, 비교우위에 의한 국가 간 효율적 자원배분, 즉 국제분업이 가능해졌다. 한 국가가 반도체보다는, 가령 의류 생산에 경쟁력이 있다면 의류 수출을 통해 번 돈으로 필요한 반도체를 수입하면 되었던 시대가 일극체제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국제분업을 통해 경제적·군사적 힘을 키운 중국 그리고 글로벌 자원시장의 강자가 된 러시아 등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한 다극(multi-polar)체제로 전환되면서 국제분업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율성은 전략경쟁에서의 승리에 필요한 핵심 가치가 아닌 것이 되었다.

특히 군사적 우위는 전략경쟁에 있어 핵심 요소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최첨단 반도체가 탑재된 무기체계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 특성상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지배된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에는 정서적 반감이 있다. 그 반감이 정치권으로 하여금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꺼리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동북아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나라가 전략적 중추국가(pivot state)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전략적 목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 입장에서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우리나라와의 전략적 협력이 절실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략적 공간도 넓어지게 된다.
이 같은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충분한 자원배분은 우리나라가 다극체제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책 선택이라 하겠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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