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남미 공산국가 쿠바의 수교가 부른 나비효과일까. 올해 3월에 쿠바 예술대학(ISA)에 한국어 강좌가 신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양국 간 극적 수교 발표 이후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한류 확산 기운이 이처럼 완연하다. 쿠바가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는 건 엄청난 함의를 지닌다. 수교국 한 나라를 더하는 차원 이상이다.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혁명에 성공한 뒤 1960년 북한과 국교를 맺고 한국과 교류를 끊었다. 이후 카스트로는 반미를 코드로 김일성 주석과 죽이 잘 맞았다. 소련·중국이 참가한 1988년 서울올림픽도 북한과의 의리를 들어 보이콧할 만큼. 1980년대 개혁·개방을 택한 소련은 쿠바의 무기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카스트로에게 AK소총 10만정 등을 무상 지원했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으로선 '형제국' 쿠바의 변심은 충격이었을 법하다. 한·쿠바 수교 발표 다음 날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북·일 관계 개선 여지를 거론했다. 일본인 납치와 북핵 문제를 거론 말라는 전제조건과 함께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도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라기보다 서울 주재 쿠바대사관 개설이 임박한 데 따른 초조감이 잔뜩 묻어나는 대목이다. 탈냉전과 함께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권을 상대로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가 첫발이었다. 그 성과를 토대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를 노크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같은 기조였고, 박근혜 정부는 더 적극적이었다. 유독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던 문재인 정부만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한·쿠바 수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성사됐지만, 북방외교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쿠바는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기 전 사탕수수 수출과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였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럼주와 설탕을 뒤섞은 칵테일 모히토를 즐겨 마셨던 데서 보듯이. 그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오래 체류하면서 '노인과 바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 입은 곧 생존도구다. 정치인들은 입을 잘 놀리고 말에 능숙하다. 언변이 좋아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역(逆)도 성립된다.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로 대중을 휘어잡는 기술은 정치인의 능력으로 간주된다. 다변(多辯), 능변(能辯)이 정치인의 필수요소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언로가 막혀서 유언비어가 날뛰어서는 안 되고, 불통과 곡해를 방지해야 하기에 말의 가치도 그만큼 소중하다. 말의 선의(善意)는 절제를 지킬 때 발휘된다. 절제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말은 악변(惡變)한다. 중상과 비방에서 그치지 않고 설화(舌禍)를 부른다.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참아내는 절제는 참 어려운 윤리다. 인륜을 갖춰야 하고 인내를 알아야 한다. 두 가지가 다 부족한 다변자가 설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농후하다. 정치의 계절이 오자 말의 천태만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이다 화술'로 스타 정치인이 되었다가 형수 욕설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2찍' 막말은 다변 이 대표의 인성을 다시 의심케 했다. 정치생명이 끊어지게 생긴 국민의힘 젊은 정치인 장예찬의 과거 언사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장예찬의 설화는 잘못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지만,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발언이 만약 확신의 소산이라고 하면 보통 문제는 아니다. '오홍근 회칼 테러'를 들먹인 것만으로도 잘못이다. 이재명, 배현진의 테러까지 옹호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누구나 자신이 극우세력이라고 해도 비호할 바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언론전략기획단장을 지낸 황 수석은 결과적으로 여당에 치명상을 입혔다. 후배 기자들을 앞에 앉혀놓고 편하다 보니 막말을 한 것이라고 본다. 언론에서 정치로 전향한 그의 정치적 미숙함도 원인일 것이다. 언론사 선배와 후배가 아니라 용산의 핵심과 언론인의 자리임을 망각한 게 분명하다. 황 수석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의 성향도 모르고 다변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다. 말 훈
새의 이미지는 통념상 긍정적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앵무새는 금실 좋은 부부 관계를 가리킨다. 동화 속 파랑새는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트위터 로고였던 파랑새 캐릭터는 창업자가 15달러에 구매했던 게 원조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뒤 X로 바꿔버렸지만, 트위터의 상징이던 파랑새에 대한 추억은 여전하다. 상상의 새 봉황은 새 중의 왕이다. 성스러움뿐만 아니라 명성과 재물의 상징이다. 대통령실 상징체계(CI)에도 대한민국 수장의 상징인 봉황이 담겨 있다. 봉황이 대한민국의 자유·평화·번영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1970년 발표된 소설 '갈매기의 꿈'은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이상형을 그렸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은 땅에 붙어산다. 대륙에서 예측할 수 없는 위협에 시달린 인간은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을 키워간다. 이는 땅과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새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고, 새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각인됐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새 이미지는 부정적 어감을 갖게 됐다. '나 완전히 새됐어' 가수 싸이의 2001년 정규 1집 타이틀곡 '새'에 등장하는 가사다. 상대방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성의를 다했는데 본인에게 돌아오는 게 없어 허무한 상태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한탄하는 은어다. 그런데 하필 왜 새를 콕 집어서 은어를 만들었을까. 새들 입장에서 갸우뚱할 만한 의문이다. 여러 주장 가운데 솔깃한 배경이 있다. 한자 새(鳥)의 구성요소인 음과 훈(뜻)에 따르면 '새 조'가 된다. '조'에 'ㅅ'을 받쳐 발음할 때 욕설이나 비속어가 될 논란을 비켜가려고 '새됐어'로 우회 표현했다는 주장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싸이의 가사가 도발적이었던 점을 곱씹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다. '새됐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왕성한 확장성을 보인다. 판사가 법의 본뜻을 외면하고 궤변으로 법을 왜곡했다며 경멸당하는 표현이 '판새'다. 요즘엔 의대 증원이 촉발한 의사 파업
"민주화운동 세력은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지난 1월 31일 열린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서 민주화운동동지회 함운경 회장의 첫 발언이었다. "민주화운동 경력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명예와 역사성을 인정받는 자부심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상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무슨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너는 그때 뭐했느냐고 타인을 질타할 권리 또한 없다는 게 함 회장의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운동 자체나 민주화운동 투신 경력이 문제일 수는 없다.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의 헌신과 용기에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말에 공감한다. 따라서 싸잡아 운동권이 아니라 운동권 정치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끼치는 해악의 청산을 말해야 한다. '운동권' 청산보다 '운동권 정치' 청산이 바른 인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운동권 정치의 해악으로 우선 꼽아야 할 것은 친북·종북적, 반대한민국적 세계관이다. 토론회에서 '운동권 정치세력의 반칙과 타락'을 발제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1980년대 운동권 정체성의 모태는 근현대 역사관, 특히 (왜곡된) 대한민국관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국에 의해 태어난, 태생이 잘못된 종자라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 이식된 운동권 철학의 강고함에 갇혀 있는 운동권 정치세력의 기본적 세계관이다. 김 소장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는 행태를 날카롭게 질타"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주화운동과 하등 인연이 없다. 하지만 '우리 북한 주민들'에 이어 "(김정은의)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6·25는 "크고 작은 군사충돌의 결과"라고도 했다. 일종의 "말버릇"이라면 친북 운동권의 말버릇 그대로이다. "북의 전쟁관은 정의의 전쟁
제22대 총선의 해가 밝았다. 미국 대선을 비롯, 전 세계 47개 나라의 20억 인구가 선거 몸살을 앓는 중이다. 문제는 인공지능(AI)이 만국 공통의 선거 이슈란 점이다. AI가 생성한 교묘한 가짜뉴스가 유권자의 선택을 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AI가 만든 딥페이크(특정인의 얼굴을 특정영상에 합성하는 편집물)와 가짜정보는 선거와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2024년은 'AI 선거'의 원년으로 기록될 듯하다. 화두는 AI발 가짜뉴스다. 돌이켜 보면 2016년이나 2020년 미국 대선은 SNS 선거였다. 부풀어 오른 SNS의 부작용이 AI 시대를 맞아 폭발해 버릴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가 투표자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출처불명의 가짜뉴스가 바닥을 적셨다. 올해는 AI발 가짜뉴스가 선거 판도를 본격적으로 뒤흔들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가 쓰나미처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조작 주장이 불복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AI 전문가인 워싱턴대 오런 에치오니 명예교수는 "미국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거나 어느 후보자가 실제로 한 적이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인출하러 뛰어가는 모습이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테러와 폭력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짜뉴스 범람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챗GPT 등 생성형 AI 기술이 등장 1년 만에 도깨비방망이처럼 그럴듯한 가짜 정보나 이미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AP통신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클릭 몇 번으로 몇 초 만에 가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교한 AI 도구가 나온 이래 치러진 첫 번째 선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실제 선거에 미친 결과를 목도했다. 얼마 전 슬로바키아의 유력 후보가 맥주 값 인상과 선거조작 계획을 논의한 음성녹음이 선거판에 나돌았다. AI발
"정부는 필요할 땐 아무리 찾아도 없고, 필요하지 않을 때 바로 뒤에 서 있다." 이 말을 한 이는 포철 신화의 주인공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이다. 박정희 시대 정주영 현대 회장이 도로로 '산업화 대동맥'을 구축할 때 박태준은 철강이라는 '산업의 쌀'로 근대화의 기수가 됐다. 가난한 나라, 척박한 땅에서 쇳물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기대한 해외 인사는 없었다. 자금줄을 못 찾고 막막함에 끌어다 쓴 돈이 대일청구권자금이다. 조상의 핏값이 헛되이 되면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고 한 이도 그였다. 황량한 포항 백사장에 거대한 제철소가 들어섰다. 그의 재임 말기 포스코의 조강능력은 세계 2위까지 올랐다.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38명의 요원과 함께 이뤄낸 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건 공기업의 잔인한 운명이다. 계속될 것 같았던 박태준 신화는 신군부, 문민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무너진다. 외풍을 막으려고 뛰어든 정치는 그뿐 아니라 창업공신들까지 몰락의 길로 밀어넣었다. 문민정부의 포스코 개혁은 요란했다. 황경로 2대 회장은 6개월 만에 물러나고, 정명식 3대 회장도 1년을 못 버텼다. 그사이 박태준 사단은 사실상 전멸했다. 물갈이가 끝난 것이 관료 출신 김만제 회장(4대)에 이르러서다. 하지만 서서히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오고 있었다. 김만제 회장 역시 임기를 못 채우고 유상부 회장(5대)에게 넘겨준다. 유 회장 시절인 2000년 포스코는 정부가 지분 한푼도 갖지 않은 민영기업으로 거듭났다. 국민연금에만 5% 이상 지분을 허용했고, 광범위하게 지분이 팔려 소액주주가 75%에 달했다. 명실상부한 국민기업인데도 회장 수난사는 계속됐다. 뒤를 이은 이구택(6대), 정준양(7대), 권오준(8대) 회장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옷을 벗었다. 주로 호텔 커피숍에서 누군가의 대리인이 차기 회장의 이름을 포스코 측에 불러주는 식이었다. 이것이 허허벌판 맨땅에서 기적을 일군 굴지의 기업을 대하는 정부의 방식이었다. 이제는 최정우 회장 차례다. 포스코 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