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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사교육비 해결 못하면 출산율 상승 꿈도 못 꾼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4 18:24

수정 2024.03.14 19:10

작년 27조원 넘어 또 역대 최고
축소 대책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위치한 한 의대 입시 전문 학원 앞에 의대 준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위치한 한 의대 입시 전문 학원 앞에 의대 준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매년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에 학부모의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은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가 27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보다 1조2000억원(4.5%) 늘어나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학생 5명 중 4명꼴로 사교육을 받고 있고, 1인당 월평균 55만원을 쓰고 있다.


증가 폭이 2022년 10.8%의 절반가량으로 떨어졌다지만 전년도의 높은 물가상승률(3.6%)을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하다. 물가보다 사교육 단가가 더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통계에는 소위 N수생 사교육비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우리 사회 사교육비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교육 소비자인 초·중·고교 학생 수는 지난해 521만명으로 1년 전보다 7만명이나 줄었다. 그럼에도 매년 1조원 넘게 사교육비 총액이 순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사교육 과잉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발언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사교육 경쟁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사교육비 증가 폭이 8.2%로 7년 만에 가장 높은 배경이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사교육 양극화다. 월평균 가구소득 8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각각 67만원, 18만원으로 5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도 지난해 소득 상위 20%(5분위) 교육비 지출이 1분위(소득하위 20%)의 8배나 됐다. 고소득층은 한달에 수백만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부모의 부가 아닌, 자신의 능력만으로 올라가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아이를 둔 가정에서 사교육비는 지출 1순위다. 허리가 휠 정도로 커지는 부담에 젊은 세대와 신혼부부들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12월 '월평균 실질 사교육비가 1만원 늘어날 때마다 합계출산율이 0.012명 줄어든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타당한 분석이다.

저출산과 마찬가지로 사교육비 축소를 위한 정부 정책은 실패했다. 교육정책 불신, 의대 열풍 등으로 사교육 기세는 꺾이기는커녕 더 팽창할 것으로 예상돼 문제다. 30조원에 육박하는 사교육 시장은 이미 거대한 카르텔이다. 경기침체 속에서 유명학원 사교육 업체만 비정상적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부가 최근 유명학원과 교사들의 뒷거래를 적발했는데 빙산의 일각이다. 이것도 신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허위·과장 공포마케팅으로 사교육을 조장하는 행위,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대대적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 수능점수로 서열화하는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혁도 시작해야 한다. 학벌우선 사회를 벗어나 젊은 세대에게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고 응원하는 인식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교졸업자 직업교육을 확대·장려하고 롤모델을 찾아 이들의 노력과 성공을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세대가 짊어질 사교육의 굴레를 끊어내도록 지속적으로 혁신방안을 찾고 공론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원에 내몰리는 아이들, 붕괴된 공교육을 지키는 교사, 사교육비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부모, 이들을 목격하며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 모두가 더 불행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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