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파괴적 'AI 물결' 앞에선 '법과 제도', 파괴적 혁신 가능한가 [박성필의 수담활론]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8 07:00

수정 2024.02.18 10:33

박성필의 인공지능 거버넌스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수담활론(手談闊論)]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수담)을 통해 우리사회 곳곳의 이슈들을 파악하고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편집자 주>

파괴적 'AI 물결' 앞에선 '법과 제도', 파괴적 혁신 가능한가 [박성필의 수담활론]
[파이낸셜뉴스] 2023년 2월 미국 저작권청은 2022년 9월 승인했던 크리스티나 카슈타노바의 만화 '새벽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의 저작권 등록을 취소했다.

18쪽의 짧은 만화인데, 텍스트는 카슈타노바가 작성했고, 그림은 생성형 AI 미드저니가 그렸다. 저작권 등록 취소는 생성형 AI 미드저니가 그린 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만, 작품의 텍스트에 대한 저작권, 이미지와 텍스트의 창의적인 선택, 조정, 배열은 인간 작가인 카슈타노바의 창작물(편집저작물)로 인정받아 저작권 등록이 유지됐다.

카슈타노바는 미드저니가 이미지 제작의 도구였을 뿐 창작자는 자기 자신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미 저작권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카슈타노바가 미드저니에 입력한 프롬프트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미드저니는 카슈타노바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성했다는 점을 미 저작권청은 주목했다. 저작권청의 판단으로는 생성형 AI는 인간 작가가 통제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벽의 자리야. 위키피디아
새벽의 자리야. 위키피디아
핵심은 두 가지다. 생성형 AI가 그린 이미지는 등록 가능한 저작물이 아니라는 것,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에 활용되는 도구도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 'AI 수로부인'이 최초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영화는 나라AI필름의 작품인데, 시놉시스, 시나리오, 이미지, 영상, 자막, 대사, 배경음악 등 전체를 여러 회사의 생성형 AI로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다만, 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AI 수로부인' 영화는 영상저작물로 등록된 것이 아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 등을 인간이 선택, 배열, 구성한 데 창작성을 일정받아 편집저작물로 등록된 것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의 자리야에 대한 미국 저작권청의 입장과 유사하다.

저작권은 '권리의 다발(bundle of rights)'이다.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 있고, 저작재산권에도 복제권, 전시권, 배포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2차적저작물작성권 등 다양한 권리가 포함된다. '편집저작물'이란 무엇인가. 창작성 있는 편집물을 말한다. '편집물'은 기존 저작물, 부호, 문자, 음성, 음향, 영상, 그 밖의 자료 등의 집합물을 말한다. 편집물의 그러한 구성요소들을 '소재'라 하는데, 이들 '소재'의 선택, 배열, 또는 구성에 창작성이 있으면 저작권 보호가 가능한 것이다. 다만 편집저작물에서도 각 소재의 저작권은 별도로 판단한다. 기존 저작물과 저작권 만료나 포기, 기부 등 여러 사유로 퍼블릭 도메인에 들어있는 소재가 모두 편집저작물을 구성할 수 있다. 'AI 수로부인'의 이미지들이 AI 생성물이라면 현행 법제도상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 이미지들로 제작한 영상물도 마찬가지다.

AI 수로부인’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출품 포스터
AI 수로부인’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출품 포스터

이처럼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는 인간의 창작물만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가장 진보적인 입법은 1988년 영국 저작권법일 것이다. 이 법은 '컴퓨터에 의해 생성된' 저작물은 창작에 필요한 조정을 한 사람을 저작자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영국은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 작가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 프롬프트의 입력이 ‘조정’에 해당한다고는 보기는 어렵고, 컴퓨터가 생성한 이미지가 인간을 전제로 한 창작성(originality) 개념을 충족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다른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스티븐 탈러 박사는 2018년 생성형 AI인 '창의기계'로 그린 '파라다이스로 가는 최근 입구'의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다. 그는 이 작품이 업무상저작물(work-for-hire)로서 저작자는 창의기계이며, 자신은 저작권의 양수인이라 주장했다. 저작권청은 두 차례의 공방 끝에 등록을 거절했다. 2023년 DC 연방지방법원도 거절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저작권 보호는 인간의 창작물에만 인정된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미국 저작권청 심사위원회가 2023년 9월 미드저니가 산출한 작품 '우주의 오페라 극장'의 저작권 등록거절을 확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한 해 전 미국 콜로라도주 회화 공모전에서 우승까지 했었다.

생성형AI. 뉴시스
생성형AI. 뉴시스
법제도는 파괴적 혁신이 어렵다. 다만 생성형 AI와 같은 파괴적 기술, 그로 인한 산업의 다양한 파괴적 혁신을 규율하고 지원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법제도의 역할이기도 하다. 생성형 AI가 산업과 인간의 삶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시점에서 조금 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작가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많은 반복 작업을 통해 AI 생성물을 점점 더 자신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에 가까운 작품으로 정교화시킨다면, 이것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창작 방식의 변화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생성형 AI는 인간 창작자의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더 맞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인간의 창작과 AI의 예측할 수 없는 창작을 결합한 인간-기계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의 저작권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인간이 유일한 창작자라는 전제 하에 제정된 세계 각국의 저작권법은 이러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줄 수 없다. 궁극적으로 AI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방식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때 저작권 법제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신속히 발전하는 기술과 산업의 관점에서는 법제도의 그런 변화가 대단하지도 않고 속도도 느리게 보일 수 있다. 다만 법의 속성을 고려할 때는 소심하게나마 파괴적 혁신이라 불러도 될 큰 변화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