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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왜 대만 총통선거에 침묵하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8 18:23

수정 2024.01.24 08:56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나
한중 정상회담 재개 위한
저자세 외교 하지 말아야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선거에서 친미성향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차기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중국은 수시로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대만 근해에 출격시키고, 라이칭더가 당선되면 "대만해협에 전쟁위기가 고조될 것"이라고 대놓고 협박하면서 안보불안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대만 '독립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중국의 노골적 선거개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왕이 외교부장은 "대만 지역 선거는 중국의 지방 사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대만 독립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죽음의 길"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미국은 전직 고위 외교관리들로 구성된 비공식 대표단을 선거 직후 대만에 파견, 라이칭더를 면담하고 대만 차기 정부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또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은 외교장관 담화 등 여러 경로로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을 공식적으로 축하했다.
물론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강력 반발하며, 이들 국가에 "엄정한 교섭(외교경로를 통한 항의)"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주요국의 이러한 반응과 대조적으로 한국 정부는 축하 메시지는 물론이고 대만 총통선거에 대한 그 어떤 공식적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기존 우리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외교부 당국자의 원론적 언급이 전부다.

윤석열 정부는 인권과 민주주의 등 가치를 중시하고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지향하는 인태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반발에도 대만과 남중국해 등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라는 원칙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래서 한국의 이번 침묵은 좀 의아스럽다. 물론 중국이 핵심이익 중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대만 문제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 '엄정한 교섭'을 제기하면 한중 관계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현안으로 남아 있는 한일중 정상회의 조기 개최나 작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산된 한중 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협조를 바라고 중국 눈치를 살피려는 게 침묵의 주된 이유라면 좀 문제다. 이는 중국의 선의에 기대는 과거 대중 저자세 외교로 회귀하는 것이자, 대중외교 원칙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일중 정상회의나 한중 정상회담 모두 중국의 비협조와 외면으로 성사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중국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보복이 두려워 알아서 원칙을 굽히는 저자세 외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에 목을 매면서 대중 관계 개선에만 공을 들였던 과거 한국 정부가 중국에 끌려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은 그동안 한중 정상회담 재개와 관계 정상화, 경제적 당근과 보복 등의 재료를 적당히 섞어 버무리면서 한국에 대한 외교적 길들이기를 해왔다. 미일에 밀착하면서 인태전략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중국이 압박할 이유는 전임 한국 정부보다 훨씬 더 크다. 지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의 정상회담 외면이나 한때 적극적 자세를 보이던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로의 돌변이 그렇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이나 안정적 경제공급망 확보 등 우리가 마주한 대외적 도전은 대부분 중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안보위협인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 등에서 북한을 두둔하는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그동안 수출과 핵심광물 수입에서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안보 리스크가 되었다.
중국의 직접적 영향력하에 있는 최인접국인 한국의 가장 큰 외교적 딜레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힘이 세진 중국에 과거와 같이 주권과 국가적 존엄을 무시당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중국이 한국을 존중하도록 하는 양자 관계를 새롭게 구축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놓인 가장 큰 숙제다.
대만 선거에 대한 정부 침묵의 이유가 대중 관계에 대한 조급함에 따른 중국 눈치보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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