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R&D 예산 논란, 기준 정립이 먼저다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11 18:18

수정 2023.10.11 18:18

[강남시선] R&D 예산 논란, 기준 정립이 먼저다
"과학뿐 아니라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투자가 중요하다. 과학의 선두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하고 새로 나타나는 분야를 알려면 그 분야 연구를 하고 있어야 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역대 노벨물리·화학상 수상자들이 모여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 대폭 삭감한 데 대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과학기술계에서도 기초과학 등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에서도 R&D 예산 삭감은 '뜨거운 감자'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몇 년간 집행된 R&D 예산이 새로운 기술 개발보다는 한계기업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됐다며 비효율적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카르텔'을 언급하며 '나눠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반면 야당은 정부가 그동안 추진하던 주요 연구개발사업들이 갑작스러운 예산삭감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이는 정부의 국정과제와도 배치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과학계도 비상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도 깎이지 않았던 정부의 R&D 예산이 33년 만에 줄면서 연구현장에서 사기저하와 함께 인재이탈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최근 3년간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떠나는 연구원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0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25개 출연 연구기관을 떠난 연구자는 720명에 이른다. 특히 지난 2020년 195명에서 지난해 220명으로 늘었고, 올 상반기에만 103명이 자리를 옮겼다. 내년 R&D 예산 삭감으로 일부 학생연구원에게는 인건비도 못 주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연구자들의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 문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R&D 프로젝트 성과와 예산 지원을 연계시키는 제대로 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R&D 예산과 관련, 특정 집단의 기득권적인 사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 정부 예산으로 연명하는 사업 등은 예산을 삭감해 구조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대신 국가 경쟁력이 있는 사업에는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난 33년간 R&D 예산을 꾸준히 늘려왔음에도 사업 평가와 예산을 연계시키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과 과학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
사업 성과와 예산을 연계시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데 R&D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노벨물리·화학상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hjkim@fnnews.com 김홍재 정보미디어부장 산업부문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