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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아파트 백년대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26 18:04

수정 2023.07.26 18:04

[fn광장] 아파트 백년대계
국내 최고령 아파트로 근대문화유산인 서울 충정아파트(1937년 준공)의 재건축이 임박했다. 아파트는 정치적이다.

근대 아파트의 시작은 1853년부터 1870년까지 있었던 파리 대개조 사업이다. 중세시대의 좁고 구부러진 길은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이 바리케이드전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파리 시장에 취임한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은 도로와 상하수도를 정비하면서 녹지를 조성하고 도로를 따라 주상복합 아파트를 만들었다.

해방이 되어 정부가 수립되고 새 주택정책의 일환으로 아파트가 건축되었다.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식 치사에서 "아파트는 생활혁명이며, 혁명한국의 상징"이라고까지 했다. 6·25전란으로 인한 월남민과 해외동포 증가, 도시화로 인한 주택 부족은 체제 안정과 직결된 문제였다. 무허가 판자촌과 꼬방동네 증가는 박정희 정부가 볼 때 혁명 전야의 파리와 같았다. 청계천과 꼬방동네를 밀어내고 아파트를 찍어냈지만 국민들은 저질 공동주택으로 인식했다.

1971년 남진의 히트곡,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임과 함께'는 이런 주택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판잣집이 아니라 단독주택을 갖고 싶다! 십년이 지나서 1982년 윤수일의 '아파트'가 대히트를 친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66년 이호철의 연재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서울은 폭발 직전이었다. 1960년 245만명에서 1970년 543만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때 공유수면 매립 등으로 확보된 토지 위에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 개발된다. 반포주공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한강맨션아파트가 빅히트를 친다. 월남전 특수와 산업화로 형성된 중산층의 수요와 맞아떨어졌고, 북한과 체제경쟁에 위기를 느꼈던 정권의 강남 개발의지 그리고 건설업자들의 이익이 작동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 도시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산물의 하나'(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지리학자)가 된다. 다른 나라와 달리 대규모 단지화의 길을 걸으면서 인근과 담을 쌓는 배타성을 갖게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아파트는 계급을 규정짓고, 다른 종류의 주택과는 다른 압도적으로 우월한 종이 된다.

전 국토의 공동주택화가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아파트가 같은 아파트는 아니다. 브랜드가 다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2001 롯데캐슬),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The PALACE 73).

앞으로의 아파트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로 인해 빈집과 슬럼화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인구 고령화로 재건축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아파트여야 할까. 오래가는 내구성과 가족 관계의 변화를 수용하는 가변성과 수리 용이성이 중요하다. 이른바 장수명 아파트이다. 동네에서 삶을 마치는 커뮤니티 케어를 아파트 단지가 포용해야 한다.


아울러 아파트의 단지화를 해체하고, 아파트와 아파트의 조경길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 우리가 지은 아파트는 파리와 달리 단지화의 길을 걸으면서 도시를 변경 불가능하게 구조화했다.
그나마 이를 보완하는 길이 조경길을 이어주는 것이다.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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