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책대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20 13:48

수정 2023.07.20 13:48

밀란 쿤데라 / 사진=뉴시스
밀란 쿤데라 / 사진=뉴시스

지난 11일(현지시간) 밀란 쿤데라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다.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밀란 쿤데라는 1929년 4월 1일 체코 브루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찍이 음악에 뜻을 뒀으나 이후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문학가로 전향한다. 경직된 전체주의 사회에 반기를 들고 첫 번째 소설 '농담'을 발표한 쿤데라는 곧 공산주의 정부의 불편한 주목을 받게 됐다.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실패한 체코, '농담'은 판매가 중지됐고 영화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그는 해임되어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9년 후 그는 프랑스에서 불후의 명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출간한다. 난해한 해체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에 사색과 이야기가 자유분방하게 뒤섞인 쿤데라의 소설은 큰 화제가 됐고 그는 이 소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 아리안 슈맹 / 뮤진트리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 아리안 슈맹 / 뮤진트리

1960년대 체코를 배경으로 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방황하는 네 남녀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민주화 운동과 소련의 무력 침공이 맞붙던 1968년, 체코는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있었다.

이러한 시대상에서 쿤데라는 "역사란 개인의 삶 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라 서술하며 네 남녀의 교차하는 애정 관계를 통해 절대적으로 엄숙한 것은 없으며 모든 존재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무겁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지금까지 24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서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판이 100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했다.

밀란 쿤데라는 그 유명세에 비해 대중에게 사생활이 많이 노출되지 않은 작가였다. 일찍이 “공산주의 나라들에서는 경찰이 사생활을 파괴하지만, 민주주의 나라들에서는 기자들이 사생활을 위협한다”라고 말했던 쿤데라는 “내밀한 것의 유출이 우리 삶의 중대한 위협”이라며 1985년부터 자발적 실종 상태에 들어갔다.

40여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그는 매체와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며 오로지 작품으로만 독자를 만나왔다. 뮤진트리에서 출간된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는 체코부터 프랑스까지 쿤데라의 자취를 추적하며 그의 기묘한 부재 너머를 엿보는 책이다. 저자 아리안 슈맹은 프랑스 언론인이자 작가로 '르 몽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작가들에 대한 여러 연재 기사를 발표해왔다.

쿤데라를 '책을 통해서 살고, 책 속으로 사라진 사람', '이미 이야기한 책들의 소리 없는 화자가 된 사람'으로 호명한 저자는 쿤데라와 50년 동안 함께한 아내 베라 쿤데라와 그의 친구들의 기록을 통해 이 유령 작가의 흐릿한 전기를 복원하며 쿤데라의 작품 세계에 더욱 긴밀하게 접근한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민음사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실린 작가 소개는 이게 전부다. 아마 작가 소개가 역자 소개보다 짧은 몇 안 되는 번역서일 것이다.

쿤데라는 생전 극도로 절제된 사실을 담은 이 두 문장만 자신의 책에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저 짧은 소개 뒤에 ‘2023년 별세했다’는 문장을 덧붙여야 한다. 그는 인생의 가벼움을 역설했지만 그가 일궈낸 예술은 ‘영원한 지저귐’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남았다.
위대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지수 교보문고 인문예술 MD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