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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백 청년'의 일침 "지금 한국은 성장통, 초심으로 돌아가라" [경제원로에 듣는다 (박정희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 신동식 KOMAC 회장)]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21 18:38

수정 2023.06.21 19:11

어린시절, 희망을 보다
피란시절에 처음 본 미국 수송선·군함
'바다를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 깨달아
"우리도 저런 국가 됐으면" 조선에 심취
젊은 조선전문가, 경제강국 설계하다
박정희 대통령 "같이 일해보자" 요청
30代에 한국 중장기 발전계획 그리며
산업개발 돈 구하러 해외로 돌아다녀
한국조선산업 초석을 놓다
풀밭으로 변해 있는 열악한 조선 환경
거제에 초대형 조선소 만들자고 건의
주변 반대에도 조선강국 프로젝트 시동
한국해사기술을 설립하다
일신우일신 신념으로 새로운 도전 나서
54년간 2000종 선박·대형조선소 설계
국가·국민·기업 한뜻으로 미래 개척해야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 시절 추진했던 과학기술강국 건설과 조선산업 발전 마스터플랜 등 굵직한 경제발전 계획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 시절 추진했던 과학기술강국 건설과 조선산업 발전 마스터플랜 등 굵직한 경제발전 계획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박정희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국 조선업의 산증인 신동식 한국해사기술(KOMAC) 회장의 사무실은 서류 더미와 흑백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빛바랜 액자엔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낯익은 인물과 제철소 현장, 과학기술 연구소, 조선소 부지를 누빈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흔하나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신 회장은 최신 산업 트렌드를 살펴보고 직접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한다. 신 회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동력으로 우리 국민의 집념과 도전정신을 꼽았다.
그는 한국 경제가 성장의 기로에 섰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미래 초강국으로 다시 도약하려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담=손성진 논설실장

■절망을 딛고 희망을 보다

신 회장이 초강대국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조선업에 몸담을 꿈을 꾼건 한국전쟁 시절이다. 피란 갔던 부산의 항만에서 하역일을 하며 도넛으로 허기를 때우는데 미국의 수송선과 군함이 눈에 확 띄었다. "어마어마한 선박의 위용에 눈이 번쩍 뜨였고, 구호물자와 탱크의 수에 압도당했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을 만큼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인데 미국의 위용을 보며 부러웠고, 우리도 저런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조선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때였다. 아버지가 지방법원장을 지낸 법조 집안에서 자란 신 회장은 서울대 조선학과에 입학한 뒤 집에서 한동안 쫓겨났다.

조선공학 이론체계도 잡혀 있지 않던 시절이라 학업환경은 열악했고 졸업을 했어도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잠시 여고 교사로 일하기도 했는데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등 당시의 제자들을 지금도 만난다고 한다. 신 회장은 무작정 외국의 유명한 조선회사에 100여통의 편지를 쓴 끝에 마침내 당시엔 최고 기술을 자랑하던 스웨덴 말뫼의 조선소에 취업할 수 있었다. 밤잠을 자지 않으며 한국에서 못한 공부와 실습을 하며 실력을 닦았다. 그런 다음 조선강국 영국으로 건너갔다. 선박의 국제안전기준을 검증하는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검사관이 된 것이다. "선박 설계와 용접, 완공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흡수할 수 있는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경제강국 설계에 몸담다

젊은 조선전문가가 된 신 회장 소식은 박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에 신 회장을 불렀다. 종이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토를 그리더니 손을 붙들고 나라를 위해 같이 일해 보자고 했다. "해외방문 일정은 1분1초가 바쁠 텐데 민족중흥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통령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강국 한국 설계자의 일원이 된 순간이었다. 30대 초반이던 1960년대에 그는 대통령 경제수석,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총장(장관급) 3개 요직을 동시에 맡았다. 그리고 조선·철강·석유화학·기계·전자를 아우르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그려나갔다.

자원 없는 가난한 나라가 부국이 되려면 뛰어난 전략이 요구된다. 신 회장이 내세운 국가경쟁력 프로젝트는 세 가지다. 먼저, '한국과학민주사회 미래상(The Vision of Korean Techno-Cracy)'을 그렸다. 중화학공업 시대를 거쳐 기술 중심의 혁신강국이 되는 한국의 미래였다. 당시 직접 작성한 서류를 보여줬다. "경제를 구축하려면 철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미래상을 만들어봤습니다. 현대 국가는 '자유'와 '배부름'을 갖춰야 되는 데 이런 가치를 달성하려면 돈과 과학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산업 개발에 필요한 돈을 구하러 해외로 돌아다녔는 데, '한국 정부의 대표 거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한국 조선산업의 초석을 놓다

다음으로 조선산업 마스터플랜에 매달렸다. 당시 조선산업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대한조선공사 현장은 풀밭으로 변해 있었고, 생산장비는 해체되어 팔렸거나 녹이 슬어 쓸 수 없었다. "최고의 선진 기술과 학문을 익혀온 내가 처음 한 일이 낫을 들고 풀을 베는 것일 정도로 조선업은 소생불가 상황이었습니다." 신 회장은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비전을 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그러나 장관들은 반대만 했다. "세계에 없는 초대형 조선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는데 모두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돈도 없는 나라가 조선소에 돈을 다 넣으면 재정이 거덜 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러나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의 식견을 잘 알던 박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로 거제를 거점으로 한 조선강국 프로젝트는 드디어 닻을 올렸다.

신 회장의 '최고작'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다. 1969년 KIST 준공식 사진을 보여줬다. 준공식에 참석했던 사진 속 인물 가운데 신 회장이 유일한 실존자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1965년 방한에 맞춰 깜짝 선물을 줄 계획이라고 알려왔는데 무엇이 좋을지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여의도에 존슨타워를 건설하자'는 의견부터 '한강에 존슨브리지를 만들자'는 말까지 나왔지요. 나는 KIST 설립을 주장했고 박 대통령은 내 제안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CCUS라는 새로운 도전

신 회장은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다. 천상 엔지니어인 신 회장은 일신우일신의 신념으로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선박 설계· 감리기업인 한국해사기술(KOMAC)을 설립해 경영하고 있다. 지난 54년간 2000종 넘는 배와 전 세계에 걸쳐 수십개의 대형 조선소를 설계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 트렌드를 간파하고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CCUS 관련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노르웨이 기업과 연계해 지난 2021년 카본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이 지금 극심한 성장통 과정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과거의 영광을 잊고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지금 상황이 1960년대와 똑같다고 봅니다. 그런데 반도체가 안 팔리고 철강이 어렵다는 등 옛날에 일군 성과를 우려먹는 소리만 하고 있어요. 옛날에 잘하던 것을 똑같이 찍어서 팔아선 안 됩니다." 그는 챗GPT를 예로 들었다. "해외 기조연설을 쓰려다가 챗GPT에 물어보니 10분 만에 무려 25쪽의 답변을 고급 영어 원문으로 떡하니 내놓더군요. 비서가 필요 없는 시대입니다. 과거에 안주한 채 창의력이 없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

■두려움 없는 변화와 기술격차만이 살길

최근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한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했다. "중국이 조선업을 장악할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대형 선박 한 척을 완성하는 데 중국은 24∼30개월, 일본은 12∼18개월 걸립니다. 한국은 6개월이면 뚝딱 만들어냅니다. 생산성과 효율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지요." 선박 강대국의 위상을 지키려면 역시 기술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가도 기업도 성장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선 변화와 기술혁신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당장 잘되는 사업에 심취하면 안주의 덫에 빠지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과학기술 발전의 뒷받침 없는 경제발전은 허구이며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과학기술을 확보해야 진정한 경제발전, 국가발전입니다."

신 회장은 국가와 기업,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들었듯이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일군 신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리더의 역할과 화합이 관건이지요. 대통령이 지휘자로 나서 오케스트라를 잘 이끌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합심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망백 청년'의 일침 "지금 한국은 성장통, 초심으로 돌아가라" [경제원로에 듣는다 (박정희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 신동식 KOMAC 회장)]
■ 신동식 한국해사기술(KOMAC) 회장은

1932년생으로 만 91세. 한국해사기술 회장 겸 카본코리아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 스웨덴 찰머스공과대학원과 영국 더럼공과대학원에서 조선공학을 공부했다. 한국인 최초로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검사관을 지냈다. '한국 조선산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1960년대 '한국과학민주사회 미래상'이라는 국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KIST를 설립하고 해외의 유명한 한인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일을 주도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엔지니어링 수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극지탐사와 해양자원 개발, 해양주권 강화에 기여해 3·1문화상을 받았고 외국인 투자유치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최근에도 인도와 중동, 필리핀 등 세계 여러 나라 국가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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