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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크림대교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0 19:12

수정 2022.10.10 19:12

8일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 대교)에서 폭발이 일어나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8일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 대교)에서 폭발이 일어나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러시아제 대형 트럭 카마즈 운전석에 빠르게 올라탄 뒤 차를 몰기 시작했다. 사이드미러 위에 꽂힌 러시아 국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30여대의 트럭이 요란하게 그 뒤를 따랐다.
푸틴이 19㎞ 거리를 주파한 시간은 16분. 이들이 질주한 곳이 케르치해협 위에 놓인 거대한 다리 크림대교다. 2018년 5월 15일 대교 개통식 풍경은 그렇게 시끌벅적했다.

크림대교는 포르투갈의 바스쿠다가마대교(17.3㎞)를 밀어내고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에 이름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동쪽 끝 케르치에서 시작해 해협의 작은 섬 투즐라를 거쳐 러시아 땅끝 마을 타만에 이르는 코스다. 푸틴이 말했던 대로 "세기의 대역사"였다. 착공부터 개통까지 푸틴이 간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빼앗은 것이 2014년이다. 공사는 2년 뒤 시작됐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사 지휘로 다리는 6개월이나 빨리 완공됐다.

크림대교에 얽힌 인물은 푸틴 외 2명이 더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다. 1943년 독일군이 크림을 점령하자 히틀러는 심복인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시켜 다리 건설을 시작했다. 건설 중 연합군에 밀려 퇴각하면서 완공은 못 본다. 1944년 스탈린의 소련군이 마침내 뒤를 이어 다리를 완공했다. 하지만 급히 작업한 탓에 6개월 만에 붕괴됐다. 푸틴은 개통날 "선조의 염원을 담은 다리"라고 했다. 크림대교는 러시아 영토 확장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지난 8일(현지시간) 크림대교가 폭발로 일부 구간이 파괴되면서 전쟁 양상이 한층 복잡해졌다. 최근 밀려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전선 핵심 보급로가 차단돼 러시아는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무엇보다 푸틴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린 것에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푸틴이 대교 붕괴를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여 집요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에는 키이우에서 폭발로 사상자가 났다.
전쟁이 더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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