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의원을 믿지 않고 〇〇에 의존하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5 06:00

수정 2022.10.15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조선말기의 화책인 <무당내력>에 그려진 천연두를 막고자 행한 ‘호구거리(왼쪽)’와 질병 치성에 행한 ‘축귀거리’ 무당 굿거리 그림
조선말기의 화책인 <무당내력> 에 그려진 천연두를 막고자 행한 ‘호구거리(왼쪽)’와 질병 치성에 행한 ‘축귀거리’ 무당 굿거리 그림

옛날 한 집안의 아들에게 희한한 증상들이 생겼다. 입안이 헐기 시작하면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어쩌다 나아도 다시 입안에는 궤양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경과 항문 부위도 헐었다. 마치 벌레가 갉아 먹은 것처럼 궤양은 깊었고 통증도 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다리에 붉은 팥만 한 뾰루지가 생기더니 통증이 심했다. 만지면 후끈후끈거렸다. 다리에 생긴 종창도 좋아졌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했다. 눈은 침침해졌고 충혈이 되기도 하고 붉어졌다 하해졌다는 반복하면서 눈앞에 뭔가 끼인 듯 답답했다.

밭일을 하면서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잘 낫지를 않고 곪은 상태로 지속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손목과 무릎 관절이 퉁퉁 붓고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해졌다가 다시 붓고 아프기를 반복했다.

아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팔다리는 나른해지고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날도 많았다. 음식 냄새를 싫어해서 밥도 잘 먹지를 못해서 기운도 없었다. 벌써 수개월이 지났지만 집안 사람들이 어디가 아프냐고 하면 어떤 증상을 가장 먼저 말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했다. 말하는 것은 마치 정신없는 듯 두서가 없었다. 말하는 증상들을 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이었다.

집안 사람들은 필시 아들에게 귀신이 씌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당을 불렀다. 무당은 아니나 다를까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굿을 한 이후에도 차도는 없었다.

어느 날 인근의 절에서 스님을 불러와 불경을 읽게 해서 귀신을 쫓아 달라고 했지만 여전했다. 무당을 바꿔 봤지만 모두들 듣도 보도 못한 귀신이야기를 하면서 굿만 해댔고, 그럴 때마다 아들의 증상은 새롭게 바뀌어만 갔다.

굿을 하도 요란하게 해서 이 집안의 아들이 병들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그래서 당연히 의원의 귀에도 들어갔다. 의원은 자신에게 병세를 물어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어느 날 오후 직접 아들의 어미를 찾아갔다.

“제가 한번 진찰을 해 봐도 되겠소?”
하지만 어미는 의원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미는 아들의 병이 귀신 때문이라 확신했기에 의원의 의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의원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미는 아들의 온몸 곳곳에 부적을 붙여 놓고 기도에만 전념했다. 부적이 붙여진 곳은 아들이 불편해한다고 말한 곳이었다.

그런데 의원은 아들의 몸에 붙여진 부적의 위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필경 하나의 병증을 떠올렸다. 이 병증은 의서에서도 잡병(雜病)이나 기병(奇病) 편에 적혀 있을 정도로 희귀한 병증이었다.

의원은 “아들의 병증은 바로 호혹증(狐惑證)으로 생각되오.”라고 말했다.

호혹증은 요즘의 베체트병에 해당하는 자가면역질환과 비슷한 병증이다.

“호혹(狐惑)이라면 여우에게 홀렸다는 말이요?”어미가 물었다.

의원은 “그렇지 않소. 호혹이란 ‘여우가 얼음을 보고서 이게 무엇인가 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병증명이외다. 호혹증에 관련된 증상들이 하도 이상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붙인 것이죠. 의서에는 충병(蟲病)으로 나와 있지만, 사실 충(蟲)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염증(炎症)을 일으키는 열사(熱邪)가 혈맥(血脈)을 따라서 온몸에 퍼져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부터 위장, 항문까지 내부 장점막에서부터 밖으로는 피부, 관절, 눈까지 혈맥이 이어져 있는 모든 곳에 불꽃과 같은 염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염(炎)이란 불 화(火) 두 개가 붙여져서 만들어진 글자로 아들의 병세를 잡으려면 청열해독(淸熱解毒)을 시켜야 하오. 이렇게 날마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좋아질 병증이 아니오.”
그러나 어미는 의원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어미는 기도를 해야 해서 빨리 의원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럼, 제 아들놈 걱정은 이제 그만 하시고 의원님이 생각하는대로 아무거나 처방을 해서 가져오시구려.”
의원은 서둘러서 약방에서 처방을 해서 가져왔다. 어미가 약을 달여서 먹이지 않을까봐 탕제로 만들어 왔다. 처방은 온청음(溫淸飮)이었다. 온청음은 사물탕(四物湯)에 황금, 황백, 치자와 같은 청열지제를 가미한 것이다.

더불어 고삼(苦蔘)을 진하게 다려서 궤양이 있거나 상처나 낫지 않고 있는 부위를 자주 씻어 주라고 당부했다. 온청음과 고삼은 대표적인 청열해독지제로 제반 염증성 질환의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조합이다.

의원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탕약을 먹이고 고삼으로 병변부위를 세척하라고 했다. 어미는 귀찮아하면서 마지못해 시키는 대로 했다. 사실 의원은 별다른 비용이 없이 탕제를 가져온 까닭으로 해가 되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청음은 맛이 아주 씀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들은 탕제를 잘 넘겼다.

“이 탕제를 하루 3번 마시고, 고삼세척은 수시로 해 보시게. 차도가 있을 것일세.”라고 당부를 하고서 약방으로 되돌아갔다.

의원이 되돌아간 이후에 아들은 다시 한번 탕제를 마시고 고삼탕 세척을 했다. 어미는 아들이 의원의 탕제를 먹고 처방대로 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미는 단지 기도 하기에만 바빴다.

“천지신명님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들놈의 할아버지의 혼령을 데려가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이 “어머니 제 증상이 한결 나아졌습니다.”라고 했다.

어미는 “이제서야 천지신명님께서 이 어미의 기도를 들어주셨구나.”라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오늘 밤에 굿을 한번 더 해야겠다. 그래야 귀신이 완전하게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어미의 말과는 무관하게 의원의 처방대로 따랐다. 그렇게 달포가 지나자 아들이 이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호혹증은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었기에 기복을 보였다.

그런데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났다. 아들의 병이 어미의 헌신적인 기도와 함께 무당의 굿으로 나았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소문의 진원지는 아들의 어미의 입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 소문은 의원의 귀에도 들어갔고, 소문을 들은 의원은 탄식했다.

"일찍이 화타는 의사가 치료하지 못할 6가지 병으로 교만하고 방자하여 치료의 이치를 논할 수 없는 경우가 첫 번째요. 몸은 가벼이 하고 재물을 중하게 여기는 경우가 두 번째요. 입고 먹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세 번째요. 성생활이 문란하여 장부의 기운이 안정되지 않은 경우가 네 번째요. 형체는 여위어서 약도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다섯 번째요. 무당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경우가 여섯 번째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의 어미는 의약(醫藥)의 때문에 좋아진 것 또한 기도의 덕분이라 하니 애석하구나. 만약 기도로 모든 병이 낫게 된다면 의서가 무슨 소용이며 무엇 때문에 세상에 약과 침이 존재한단 말인가? 참으로 우습고 우습구나."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던 중에 누군가 약방문을 두드렸다. 보니, 바로 병자의 어미였다.

“의원님, 제 아들놈 약방문 좀 다시 해 주시오. 아들놈의 병세가 좋아지다가 다시 예전처럼 악화되고 있어 제가 다시 굿도 해보고 기도를 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소. 아들놈에게 들으니 그 탕제를 먹으면 증상이 확실하게 좋아진다고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지난 번도 의원님의 처방에 의해서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요. 내 전에 무례했지만 이제 아들을 의원님께 맡길테니 잘 좀 치료해 주시오. 내 이제부터는 점이나 무당을 믿지 않고 의술에 의지하겠소.”
의원은 다시 약방문을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다짐했다.

만약 의원들의 의술이 처방하는대로 병자를 살리는데 능하다면 어찌 민간에서 무속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기도의 힘을 빌리겠는가. 또한 부작용이 심한 민간요법에 목숨을 걸겠는가.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병은 있을지언정 기도로 낫는 귀신같은 병은 없는 것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우잠잡저> 世人之惑於巫覡之術! 蓋那人讀經祈禱, 無所不爲, 而末來用藥, 其得差之夜, 以動土咀呪, 而翌朝乃云, 神巫之神效, 一代無雙. 良呵良呵.(세상 사람들이 무당에 미혹되어 있음이 참으로 심하구나! 어떤 사람이 경을 읽고 빌면서 온갖 것을 다 시도해 보다가 끝내는 의원에게 와서 약을 쓰고 나서부터 그 병세의 차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에도 다시 굿을 벌이면서 다음 날 아침에 이르기를 ‘신통한 무당의 신묘한 효과는 일대에 견줄 것이 없다’하니 참으로 우습고도 우습다.)
< 역대의학성씨. 편작편> 嘗曰 病有六不治, 驕恣不論於理, 一不治也. 輕身重財, 二不治也. 衣食不能適, 三不治也. 陰陽臟氣不定, 四不治也. 形羸不能服藥, 五不治也. 信巫不信醫六不治也.(편작이 일찍이 이르기를 병에는 치료하지 못할 6가지가 있는데, ‘교만하고 방자하여 치료의 이치를 논할 수 없는 경우가 첫 번째요. 몸은 가벼이 하고 재물을 중하게 여기는 경우가 두 번째요. 입고 먹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세 번째요. 성생활이 문란하여 장부의 기운이 안정되지 않은 경우가 네 번째요. 형체는 여위어서 약도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다섯 번째요. 무당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경우가 여섯 번째다’라고 하였다.
)
< 금궤요략> 狐惑. 虫飛也. 如狐聽氷猶豫不決之義. 其症四肢沈重, 黙黙欲眠, 目不得閉, 惡聞食臭, 舌白齒悔, 而目乍赤赤乍白乍, 變異無常.(호혹은 충증이다. 마치 여우가 얼음에 귀를 기울이며 무엇인지 몰라 망설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 증상은 팔다리가 무겁고 말없이 자려고 하나 눈을 감을 수 없으며 음식 냄새를 싫어하며 혀는 희고 이는 검으며 눈이 붉었다 희었다가 검었다 하면서 계속 달라진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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