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위안부 배상 '1차 승소→2차 각하'… 국가면제가 갈랐다 [위안부 판결 뒤집혔다]

김지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1 18:16

수정 2021.04.21 18:16

일본 손 들어 준 법원
"반인도적 범죄도 국가면제 인정
한·일 위안부 합의 효력 유지
외교 노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이 1차 소송 때와 달리 사실상 패소한 것은 국제법상 국가면제(주권면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린 결과다.

■1차 땐 국가면제 적용 배제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위안부소송의 핵심 쟁점은 국가면제 인정 여부였다.
국가면제는 주권국가 간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한 국가는 다른 나라의 국내법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을 말한다. 일본은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한다'며 소송 자체에 응하지 않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원고 1인당 1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바 있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선고한 같은 법원 민사15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간 강제노역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독일이 낸 사건의 국가면제를 인정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례를 예로 들었다. 독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권침해 범죄라도 예외 없이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취지다.

■"'한일 위안부 합의' 효력 유지"

이날 재판부는 2015년 12월 28일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의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이 합의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반성 의미가 담겼고, 일본 정부가 출연해 재단(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됐다"며 "그 재단이 피해회복에 대한 구체적 사업을 했고, 이는 일본 정부 차원의 권리구제 조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1차 소송에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이 각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2차 소송 재판부는 피해회복을 위한 일본 정부 차원의 권리구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이 민간인 업체를 통한 상업적 행위가 아닌 일본 정부의 공권력 행사라는 점도 각하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 판례는 사법(私法·개인 사이 관계를 규정한 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동원이 주권행위가 아닌 상업행위, 즉 사법적 행위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일본)는 군의 요청에 따라 총독부 행정조직을 이용해 경찰 등의 협조를 받아 피해자를 차출하고 군 위안소에 배치해 성관계를 강요했다"며 "전형적인 공권력 행사라 상업적인 행위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상적 기준을 제시하며 국가면제 적용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한일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 문제는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이날 법원의 판단이다.


위안부 피해자 변호사 측은 항소 여부는 할머니들과 논의 후 밝히겠다고 한 만큼 서울고법이 엇갈린 결과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한편 법원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해 승소한 1차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은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최근 내렸다.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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