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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온 적십자 회비 지로..일부러 세금인 척 꾸민다?[fn팩트체크]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22 11:04

수정 2020.12.22 11:04

'세금고지서 양식 무단 사용한다'는 사실 아냐
개인정보 제공 근거법 있지만 개정 필요하단 주장도
적십자 "지로 통한 모금 2023년부터 폐지할 것"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직원들이 지난달 26일 적십자회비 집중모금 기간을 앞두고 지로용지를 정리하고 있다.(사진=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제공)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직원들이 지난달 26일 적십자회비 집중모금 기간을 앞두고 지로용지를 정리하고 있다.(사진=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제공)

[파이낸셜뉴스] "적십자에서 지로가 왔는데...이거 꼭 내야하나요?"
연말이 되자 각종 온·오프라인 상에서 '적십자 회비 납부는 의무냐'는 질문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적십자사가 2000년에 지로 용지를 도입한 이후 20년째 어김없이 반복되는 질문이다.

회비 납부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지만 용지가 마치 세금 고지서처럼 생겨서 나온 질문들이다. 더구나 만 25세 이상 75세 미만의 세대주라면 개인정보 제공 동의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발송되는 탓에 '의무'로 오인되곤 한다.


이에 일각에선 적십자사 지로를 두고 "합법적 스팸이다", "일부러 세금인 것처럼 보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적십자사의 이 같은 행위는 불법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세금 고지서와 모양이 똑같은 건 적십자뿐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는게 금융결제원 측 설명이다.

적십자사는 논란이 계속되자, 내년 모금에서 모바일 전자고지를 시범실시하고 2023년부턴 세대주 지로용지 모금방식을 중단키로 했다.

■일부러 세금 고지서처럼 꾸미는 건 아냐

먼저 적십자사가 '세금 고지서 양식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러 양식을 안 바꾼다' 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금융결제원에서 관리하는 지로 용지는 금융감독원에서 일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지로로 발송되는 공과금, 통신비, 적십자 회비 모두 같은 용지를 쓰는 셈이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22일 "세금 고지서와 모양이 똑같은 건 적십자뿐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며 "동네 우유·신문 배달처럼 작은 기관을 제외하곤 다 같은 용지"라고 설명했다. 단 "적십자가 앞면에 크게 '세금이 아니다'라고 쓰는 것 등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적십자사는 지로 상단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이란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지로 납부 방식을 사용하는 다수가 노년층인 만큼 문구의 크기나 안내가 부족하단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은행에 가 적십자 회비 1만원을 납부했다는 서울 도봉구의 유모씨(67)는 "이런 종이가 오면 당연히 납부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며 "돋보기로 확인할 땐 이름과 납부액 정도만 봐왔다"고 말했다.

또 비영리 민간단체인 적십자사가 개별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태가 잘못됐단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불법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 1항에 따라 적십자사는 국가와 지자체에 회비모금, 기부금 영수증 발급 등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이 법이 오늘날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한단 지적이 제기된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만큼 제공 범위를 좁히거나 조건을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적십자사가 국가와 지자체에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조건을 '영수증 발급을 위한 것'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을 신경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로 논란 반복에 "2023년부터 지로 폐지"

이 가운데 지로 용지 효율은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합법일지라도 모금 방식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데다 직접 은행을 찾아 돈을 납부하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면서다.

실제로 지난 10월 적십자사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회비 고지서 제작·배포에 사용된 비용은 2015년 24억 3777만원에서 2019년 36억 3700만원으로 5년간 꾸준히 증가한 반면 고지서 회신율은 2015년 22.3%에서 2019년 14.5%로 매년 감소했다.

그 결과 고지금액 대비 모금액도 매년 감소해 지난해 모금률은 11.8%에 불과했다.

이에 적십자사는 이번 2021년도 모금에서 모바일 전자고지를 시범실시하고 2023년부턴 세대주 지로용지 모금방식을 중단할 계획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모바일 전자고지는 그 동안 대두됐던 고지서 형태의 지로용지, 개인정보 노출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식"이라며 "이달 말에서 내달 초 중으로 시범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적십자사는 모금 방식이 변하면 정부의 재정지원도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9년 해외 적십자사 결산 중 공적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호주 80.8%, 독일 64%, 덴마크 55.2% 등인 데에 비해 우리나라는 2.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적십자사 평균 지원액은 적십자 예산의 약 40%"라며 지원 확대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 "납부된 적십자회비는 특히 올해 코로나19 상황, 호우 피해 지원 등에서 소중히 사용되고 있다"며 "회비는 정부의 제도적인 협조로 조성되고 철저한 감시 하에 집행되는 만큼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 조윤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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