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M&A도 맘대로 못하는 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13 16:34 수정 : 2020.01.13 16:35

혁신 모빌리티 발목 잡더니
배달의민족 매각에도 간섭
정치가 규제보다 더 무서워

이번엔 배달의민족(배민)이 심판대에 올랐다. 모빌리티 타다가 정치권·검찰과 엮였다면 배달앱 배민은 정치권·공정거래위원회와 엮였다. 타다와 배민은 문재인정부의 혁신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배민이 독일 회사에 팔린다고 하자 곳곳에서 들고일어났다.
자영업자, 배민라이더 같은 이해당사자는 물론 시민단체, 정치권까지 목청을 높인다. 가장 놀란 사람은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아닐까. 김 대표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로 재미를 봤다. 그런데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가 새 주인이 된다니까 "배민은 게르만민족이었어"라는 패러디 카피가 떴다. 김 대표로선 예상치 못한, 뼈아픈 대목일 듯싶다.

배민 인수합병(M&A)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골칫거리다. 공정위는 딜레마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주 배민과 DH의 합병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공정위가 M&A를 승인하면 집권당과 자영업자들이 난리를 칠 테고, 거꾸로 퇴짜를 놓으면 혁신의 훼방꾼이란 소리를 듣게 생겼다.

타다 때도 공정위는 어정쩡했다. 처음엔 타다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국회 국토교통위에 전달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법안을 확정하자 공정위는 서둘러 "개정안에 이의가 없다"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경쟁 촉진이 존립이유다. 그러나 현실에선 호민관 역할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도 공정위가 호민관을 자임하면 배민 M&A는 퇴짜를 맞을 공산이 크다.

국내 벤처캐피털 생태계의 약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업 가치가 조(兆) 단위가 넘는 한국 유니콘 기업엔 대부분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다. 간혹 배민처럼 아예 회사를 통째로 팔기도 한다. 국내 자본은 상대가 안 된다. 그나마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은 문어발 비난이 두려워 차라리 외국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린다. 그 틈을 외국 자본이 파고들었다.

6년 전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중국인들은 환호했다. 중국 유니콘 기업이 왜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하느냐고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 덕에 알리바바는 순식간에 글로벌 IT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창업자 마윈은 영웅이 됐다. 올해 현대차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자쇼에서 미국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손잡고 개인용비행체(PAV)를 선보였다. 21세기에 미주알고주알 국적을 따지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배민을 둘러싼 논란은 플랫폼 노동자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배민라이더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수는 국내에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하는 시간·장소 개념이 고전적인 근로자들과 판이하다. 당연히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있다. 고용보험도 없고 산재보험도 없다. 이들의 노동권을 두고 각국이 고심 중이다. 명장 켄 로치 감독은 최신작 '미안해요 리키'(원제 Sorry We Missed You)에서 영국 배달노동자가 겪는 비인간적인 아픔을 고발한다.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자는 대부분 오토바이를 몰면서 위험천만하게 돈을 버는 저소득 배달원들이다. 배민이 배달앱 1위 업체답게 모범을 보이면 좋겠다.

김봉진 대표는 우아한형제들 지분을 DH 지분과 맞교환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DH의 아시아 영업도 총괄한다. 김 대표는 자영업자·라이더의 어려움을 한번 더 생각하고, 정치권과 공정위는 배민의 글로벌 전략을 한번 더 생각해 주기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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