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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자람 "‘한 땀 한 땀’ 말과 문장, 음과 리듬들을 찾았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8 01:00

수정 2019.11.18 00:59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 창작극으로
소리꾼 이자람 /사진=fnDB
소리꾼 이자람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올 한 해 소리꾼 출신의 공연 예술가, 이자람(40)의 행보는 다채로웠다. 상반기 창극 ‘패왕별희’ 작창·음악감독으로 중국의 경극에 우리의 소리를 얹더니 하반기에는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극중 예술가 ‘유진’을 연기했다.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 기록 기네스북 보유자’이지만 소리꾼에 머무르지 않고, 극본, 작창, 작곡, 음악감독, 연기, 연출 그리고 ‘아마도이자람밴드’ 보컬까지 다양한 역할을 오가는 그는 “우리 시대 보기 드문 재주꾼, 속도 꽉 찬 진정한 재주꾼”(2015년 두산연강예술상 심사평)이다.

오는 26일 4년 만에 선보이는 헤밍웨이 동명 소설 원작의 판소리 창작극 ‘노인과 바다’는 최근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됐다. 이자람은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관객들이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고 설렘을 표했다. “꾸준히 작업해왔지만 소리꾼은 오래간만이니까. 저 역시 소리꾼으로서 얼른 관객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는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등 희곡이나 근현대 소설을 판소리로 옮겨왔다. ‘노인과 바다’는 원래 40대 후반쯤 선보일 계획이었다.

“작품에게는 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지 ‘노인과 바다’가 지금의 제게 와락, 다가왔죠. 왜 어떤 이유로 판소리꾼인 제 삶으로 들어온 것인지 그걸 찾는 여정이랄까요. 판소리는 무엇이고, 관객을 만나는 일은 대체 무엇일까. 삶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 대상일까. 내게 청새치는 무엇이며, 상어는 무엇일까.”

그는 망망대해 위 노인이 청새치와 싸우는 그 길고 지난한 시간을 함께하며 바다 위 노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봤다. “작품 속 어부처럼 매일 아침 눈을 떠 제가 갈고 닦은 기술과 장비를 챙겨 바다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다시 장비를 챙겨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맞이하는 거죠. 청새치는 그런 제 삶에 다가오는 기회이자 그 안에서 저와 벌이는 한판 승부일 것 같습니다. 작품일수도, 누군가와의 만남일수도,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제 자신과의 만남일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상어는?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얻어진 커다란 보상, 그 보상 때문에 벌어지는 또 다른 싸움. 영광이 가져다 준 침략. 역시나 인생은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상어는, 제게 찾아오는 기회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찾아오는 또 다른 저와의 싸움일 것 같습니다. 두려움, 오해, 배신, 편견, 깨달음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

그는 이번 무대를 오롯이 소리로 채울 예정이다. 소리꾼 이자람의 진수를 보여줄 이 무대를 위해 그는 역시 “소리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대본 역시 좋은 소리들을 엮는 것에 집중했고, 심지어 소리 대목들이 쓰인 후 대본의 구성이나 배치가 완전히 바뀌기도 했죠. 작창의 과정이 다른 작업들에 비해 훨씬 지난하고 힘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말과 문장, 상황과 장면에 맞는 음과 리듬들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공연을 앞둔 현재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체력과 정신력”이다.
“계속해서 몸의 근육들을 다스리고, 감기를 조심하고 있습니다.(웃음) 소리꾼 이자람은 전통 판소리를 정말 좋아하고 무대 위에서도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는 편인데, 이 작품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껏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초연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가 더욱 궁금한 작품입니다.” 11월 26일~12월 1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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