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민망해진 우크라이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4 17:23 수정 : 2019.10.04 17:23
"내게 압력을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수사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가 정말 트럼프에게 굴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그가 이번 스캔들에 피해를 본 건 사실이다. 미국이 아닌 서유럽 이웃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내년 대선에서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떠오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자신의 아들이 연루된 우크라이나 검찰의 부패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과 트럼프가 지난 7월 25일 전화 통화에서 해당 의혹을 수사하라고 젤렌스키에게 압박했다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5일에 해당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며 압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녹취록이 공개되자 민주당의 주장 같은 노골적 압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빠졌다. 바로 그가 트럼프를 추켜세우고,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도와줬던 유럽연합(EU)을 폄하한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녹취록에 의하면 트럼프는 당시 젤렌스키에게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금보다 더 많이 도와야 한다. 독일은 당신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내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문제를 말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당신 말에 100%가 아니라 1000% 동의한다"며 "나는 메르켈과 만나 이야기하고 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대화했는데 그들은 러시아 제재에 대해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EU는 우리에게 보다 큰 파트너가 돼야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국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이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젤렌스키는 트럼프가 바이든 부자에 대한 우크라이나 검찰의 수사 문제를 꺼내자 "여당이 의회에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 인준을 거쳐 9월에 임명될 새 검찰총장은 100% 내 사람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야권에서는 젤렌스키가 트럼프에게 굽실거리며 사법부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젤렌스키가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오리시아 루체비치 연구원은 NBC 방송을 통해 "현지의 분노가 엄청난 수준은 아니다"라며 "젤렌스키는 앞으로 러시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벌어진 친러시아 반군과 내전을 겪으며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EU는 크림반도 사건 이후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며 우크라이나 편을 들었고, 미국도 뒤이어 제재에 동참했으나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받은 지원은 미국보다 EU에서 더 많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6~2017년에 EU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원조금액은 회원국의 개별 지원을 제외하고도 미국의 평균 2배 이상이었다. EU 측은 지난달 26일 성명에서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EU 역사상 전례 없는 지원을 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채텀하우스의 제임스 닉세이 유라시아 프로그램 대표는 CNBC와 인터뷰에서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초년생임을 지적하며 "젊고 경험이 없는 젤렌스키가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고 설명했다. 닉세이는 "그는 유럽 동맹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하찮게 만들었다. 젤렌스키는 이번 스캔들에서 살아남긴 하겠지만 이번 일은 창피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글로벌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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