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2인자' 자리 버리고 칼국숫집 사장님 왜?

뉴스1 입력 :2019.08.23 07:00 수정 : 2019.08.23 10:53
한승양 칼국수한마당 대표© 뉴스1


칼국수한마당 용인 터미널점© 뉴스1


자신의 유튜브 채널 '칼미남'에서 창업 노하우를 소개하는 한승양 대표© 뉴스1

(성남=뉴스1) 이승환 기자 = "43세 때 인생 첫 '반항'을 했어요. 남들 어렸을 때 한 번씩 해보는 그것을, 느지막한 나이에 아주 제대로 해버렸죠."

중년의 남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조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고백'을 이어갔다.

"좋은 대학 나왔고 좋은 직장 다녔죠. 모범생이었고 모범적인 직장인이었죠. 그러나 '서울대 간판'도, '조직 2인자 자리'도 모두 부질없었습니다.
"

그는 '좋은 직장' 국민연금관리공단 재직 시절 손꼽히는 '금융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칼미남'이라고 소개했다. 칼미남은 '칼국수에 미친 남자'라는 뜻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가만히 있었더라면 기금운용본부 1인자 자리까지도 충분히 가능했었다. 그가 20년간 몸담았던 금융계를 떠나 '창업'을 선택했을 때, 그러니까 자신의 생애 첫 '반항'을 했을 때, 주변에선 "미쳤느냐"고 만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식업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한승양 '칼국수한마당' 대표(59) 얘기다. 프리미엄 칼국수 전문점 '칼국수한마당'은 분당 지역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한 대표는 자신이 만든 칼국수만큼 감칠맛 나고 이색적인 인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지난 21일 분당구 구미동 칼국수한마당 본점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본부 2인자 올랐지만…"제 삶의 주어가 '한승양'이 아니었어요"

그와 기자 앞에 놓인 테이블은 부글대고 있었다. 칼국수한마당 대표 메뉴인 ‘해물칼국수’ 삶는 소리였다. 새우·꽃게·바지락·홍합 등 각종 해산물이 팔팔 끓는 육수에 잠긴 채 색이 변하고 있었다. 완전히 조리된 칼국수를 손님 앞에 대령하는 음식점과 다른 방식이다. 마치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처럼 고객이 전기레인지(인덕션)에서 칼국수를 '조리'해 먹는 것이다.

"저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고, '프리미엄' 칼국수를 생각했어요. 당연히 '맛'을 제대로 내야 하니까 연구를 거듭했지요. 칼국수와 궁합이 잘 맞다는 해물, 들깨, 팥, 콩, 매생이를 대상으로 비교·연구에 돌입했지요. 전국 방방곡곡 유명한 칼국숫집은 다 돌아다니며 '맛 비결'이 무엇인지 파악했어요."

한 대표의 이런 모습은 누구보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다. 전라북도 최고 명문고 '전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의 꿈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재수 끝에 꿈을 이뤘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 그의 꿈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었다. 지난 1985년 2월 졸업 후 금융계 인재가 몰린다는 쌍용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 증권의 전신) 채권부에 입사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 1998년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영입 제의를 받아 채권 운용 전문 인력으로 입사했다.

다음 해인 1999년 1월 조선일보는 '관리공단, 고수익 자율투자 신바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대표를 일러 공단 내부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그는 공단 투자전략 팀장 등을 역임하며 핵임 인재 조직 '기금운용본부' 설립도 주도했다. 기금운용본부 2인자 자리까지 올랐던 당시 그는 현재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칼국수 집을 차릴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웃음). 기금운용본부 소속 때 주변에선 "한승양이는 인생의 꽃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마음속엔 '갑갑함'이 계속 있었어요. 제가 프레임(틀)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말이에요. 돌이켜보니까 저의 삶의 '주어'는 '한승양'이 아니었어요. 부모님 요구, 남들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국민연금 퇴사 후 민간 기업에 입사했으나 '갑갑함'은 가시지 않았다.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면 그 프레임을 부서뜨려야 했다. 자신 인생 처음으로 '반항'을 결심했다. 사춘기 시절 한 번도 엄두도 못 냈던 반항이었다.

고3 아들과 중3 아들이 어른거렸으나 결심을 이미 굳힌 상태다. "무책임하다"고 항의하던 아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한 대표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업 준비를 했다. 그가 43세 되던 해 2003년이었다.

"창업하자마자 잘 됐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웃음). 직장 밖으로 나오니까 아주 '정글'이었어요. 정글.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학원 사업도 했고 유통 사업도 했는데 잘 안 됐어요. 학원 사업 당시엔 경리 직원이 횡령을 해서 10억대 빚을 떠안았지요.”

직장 생활 그만둔 후 무려 10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 후회했을까? 괴롭긴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가 선택한 길이었으니까요.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제가 선택한 것이었어요. 괴롭긴 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니어' 대상 가맹사업…"정글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 하고파"

한 대표는 음식업으로 눈을 돌려 지난 2013년 2월 '칼국수한마당' 문을 열었다. 전국 장수 음식전문점 가운데 칼국수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착안해 시작한 사업이다. 그는 우리 전통음식임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칼국수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칼국수한마당은 현재 경기도 용인 마평동·보라동과 분당 정자동·야탑동·구미동 등에 직영점 5곳과 가맹점 1곳을 두고 있다. 한 대표는 매달 약 2억원의 매출을 올려 '빚더미'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됐다.

그가 최근 주력하는 것은 가맹사업이다. 50·60대 시니어(은퇴한 중년의 직장인)가 대상이다. 한 대표는 '꽃길'을 걷던 그들이 회사 밖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담담했던 목소리 톤이 어느새 높아져 있었다.

"저희 가맹점주(1인)의 창업비용은 무조건 1억원 이하로 잡았어요. 보증금 등 점포 운영 비용 3000만원에, 가맹·인테리어·비품 등의 비용 5000만원쯤 더하면 총 8000만원 정도 들 겁니다. 창업비용을 최대한 줄이되 10년 이상 지속 가능한 평생직장으로서 안정된 수익구조를 보장하는 게 가맹사업의 목표입니다. 칼국수는 충분히 경쟁력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번 '인이 박인(몸에 밴)' 칼국숫집만 찾습니다.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승부하면 칼국수 점포만큼은 장수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가맹 사업'은 없습니다."

인터뷰 도중 그의 전화기는 5분에 한 번꼴로 쉴 새 없이 울렸다. 가맹 문의, 배달 주문, 식자재 문의 등이 쏟아졌다. 그는 차를 몰아 발신지로 향하곤 한다. 주문 고객에게 반조리 형태의 칼국수 가정간편식을 배달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유튜브에도 빠져 지낸다. 칼국수전문점 창업 비결 등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 ‘칼미남’을 운영하고 있다.

모범생으로 살던 한 대표는 '반항'한 대가로 시련을 겪었다. 과거엔 굳이 겪을 필요가 없던 인생의 쓴맛도 알게 됐다. 그리고 한 가지를 분명하게 얻었다. 그의 또래 세대가 간절히 원하는 '회춘'이 그것이다. 내년 환갑을 앞둔 한 대표에게서 청년의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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