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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日 전범기업 제재, WTO 룰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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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범기업들의 공공구매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국가와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일본 전범기업의 입찰을 배제하는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지난 16일 발의했다. 같은 당 김정우 의원은 전범기업이 투자한 외국인투자법인과 수의계약을 금지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안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설 의원 등은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일본 전범기업의 국가계약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달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정부와 지자체 등이 일본 전범기업으로부터 사들인 제품과 서비스 등의 구매액은 3586억원에 달한다. 만약 두 법안이 모두 통과된다면 일본 전범기업이 국가계약을 따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수출규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전범기업의 공공사업 참여를 배제한다고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이 지켜질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일본을 상대로 사업하는 국내기업들에 더 큰 피해를 줄 우려가 크다. 국제규범에도 어긋난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은 '내국민 대우'와 '차별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특정국가의 특정기업에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위배 소지가 다분하다.

일본 정부는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국제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우리도 똑같이 맞보복을 하면 그런 비판의 명분이 흐려진다. 일본이 마구잡이 보복을 해도 우리는 절제된 대응을 하는 것이 국제여론전에서 유리하다.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서는 이미 시민들의 자율적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섣불리 끼어들어 불매운동을 관이 배후조종한다는 오해를 살 이유가 없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할 때다.
서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삼가고 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 일본 정부가 19일 삼성전자에 대해 두 번째로 규제품목 수출을 허가했다. 우리 정부의 대화 제안에도 속히 응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