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伊 연정 붕괴… 고민 커진 유로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6 16:58 수정 : 2019.08.16 16:58

지난해 6월 유럽 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최초의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부가 이탈리아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충격과 놀라움에 들썩거렸다. 그리고 14개월이 지난 이달에 포퓰리즘 정부가 해체되자 유럽은 또다시 들썩이긴 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사실 모두가 이렇게 될 줄 짐작은 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관계였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2018년 3월 총선에서 포퓰리즘과 반(反)체제 공약들을 내건 정당들을 선택했다. 고질적인 경제난과 부패에 신물이 난 데다 중동에서 몰려드는 난민들을 수수방관하는 기성 정치권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국의 주도권은 가장 많은 표(32.22%)를 받은 '오성운동'과 우파연합에서 최고 득표율(17.69%)을 기록한 '동맹'에게 넘어갔다.

2009년에 탄생한 오성운동은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안 정당이었다. 오성운동은 특히 기본소득이나 최저임금 및 기초연금 확대 같은 좌파적 색채를 띤 공약을 내세워 가난한 남부 지역의 표를 쓸어 담았다. 동맹의 경우 1989년에 시작된 극우 정당이지만 2015년 난민 사태 이후에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연합(EU)과 유로존을 거부하는 동맹은 난민 수용 반대를 외치며 우파 진영의 유권자들을 끌어 모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두 정당은 얼핏 보면 각각 극좌와 극우에 가깝지만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둘 다 EU가 요구하는 긴축 정책과 난민 수용을 거부했으며 EU에 동조했던 기성 정치권을 혐오했다. 두 정당은 저소득층 지원과 세제 개편, 친러시아 정책에도 동의했다. 빨리 정권을 쥐고 싶었던 둘은 일단 몇 가지 공통점을 바탕으로 불안한 연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갈등은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동맹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중도 좌파 텃밭에서 압승을 거뒀다. 동맹 대표 마테오 살비니는 2개월 뒤 사법개혁을 놓고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드러냈다. 동맹은 올해 3월에도 24년간 좌파 텃밭이었던 남부 바실리카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고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34.3%의 표를 얻어 17%의 득표율을 기록한 오성운동을 압도했다. 살비니는 결국 이달 이탈리아·프랑스 고속철도(TAV) 건설 사업을 반대하는 오성운동과 결별을 선언하며 연정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변화의 원인은 무능과 선동의 조합이었다. 인터넷 신생 정당이었던 오성운동은 갖가지 선심성 공약에도 불구하고 지방 민심 장악에 실패했고 내각 인선에서도 적합한 후보를 찾지 못했다. 또한 오성운동은 환경 정책을 집중적으로 홍보했지만 일바(ILVA) 제철소 폐쇄나 교통량 감축같은 약속들을 못 지켰다. 오성운동이 연정 파기를 각오하고 TAV 반대에 매달린 것도 환경 때문이었다. 게다가 올해 초 오성운동은 지난해 8월에 시실리에서 난민선 하선을 금지해 기소당한 살비니의 면책을 도와 지지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반면 살비니는 과격한 반이민 정책과 기독교 가치관을 내세우며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30년 동안 지속된 당의 영향력을 발휘해 내각에 친위 세력을 구축했다. 그는 난민 사태에 시달리던 남부 민심과 기존 우파 세력의 지지를 얻었고 조기 총선을 통해 과반을 획득, 오성운동 없이 총리가 되려 하고 있다. 이미 기성 우파 세력을 이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지난해 총선 참패를 딛고 동맹과 연합하려는 분위기다. 결국 권력을 얻기 위해 손을 잡았던 두 세력은 권력 때문에 갈라섰다. 이를 지켜보던 유럽은 이제 충격 대신 불안에 사로잡혔다. 둘이 연합하든 누가 독점하든 간에 이탈리아에 드리운 포퓰리즘의 그림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글로벌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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