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폭언 줄긴했는데…"이건 신고감인가" 상사 보면 '암울'

뉴스1

입력 2019.08.16 16:08

수정 2019.08.16 16:13

© News1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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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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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민선희 기자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 16일 시행된 이후 한 달이 지났다. 현장에서는 법 시행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부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평가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법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관련 취업규칙을 마련하지 않은 사업장이 존재하고,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에 관할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는 등 미비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괴롭힘을 근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15일) 직장 내 부조리를 감시해온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한 달 동안 단체가 접수한 전체 제보 건수는 57%가 늘었다. 이중 부당지시·따돌림·차별·폭언·폭행·강요 등 '괴롭힘'에 해당하는 제보는 1012건으로 전체의 58.1%를 차지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신고되지 않았던 잠재적인 괴롭힘 사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변화 못 느끼는 사업장, 법안 미비점 빨리 보완해야 사라진다"

"아직까지 법 시행과 관련해 회사에서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회사 내 노동조합을 믿고는 있지만, 법 시행 이후 잠잠하던 차장의 폭언이 언제 또 다시 시작될지 두렵습니다."

"신고를 한다고 해도 뭐가 얼마나 바뀔지가 의문입니다. 평소처럼 행동한 다음에 '이거 신고감인가?'라며 비죽거리며 웃는 상사를 보면 달라질 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 시행 이후 회장의 갑질에 대해 여러 건 신고가 들어왔는데 회장은 신고자를 찾아내려고 하는 등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느낌입니다."

법 시행 이후 관련된 안내가 아예 없었거나 법 자체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사례들이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법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미비점들을 보완해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법 시행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 시행 자체를 알지 못하는 상사나 취업규칙을 바꾸지 않는 회사가 수두룩하다"며 "사용자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인 노무사는 "정부는 이미 한 달이 지났는데도 취업규칙 개정을 하지 않은 10인 이상 사업장에게여전히 시정기간을 부여하겠다고 한다"며 "시정기간을 줄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처벌을 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관할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라는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혔다. 괴롭힘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되어 있는데,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에는 피해 구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피해 사실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라는 내용은 매뉴얼로도 법으로도 근거가 없는 상태"라며 "이를 개선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가해자를 확실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질 제보 증가…잠재적 괴롭힘들 양성화하는 과정"

"아직까지 눈에 띄는 변화가 없기는 하지만 상대가 폭언을 하려고 하면 '녹음기를 꺼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법 시행 이후 팀장들이 언행을 조심하는 등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횟수가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법 시행 이전처럼 권하다가도 '직장 내 괴롭힘'을 언급하면서 주워담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완전하게 직장 내 괴롭힘이 뿌리뽑힌 건 아니지만 한 달이 흐른 시점에서 직장 분위기가 이전보다는 바뀌고 있다는 평가들도 있었다.

또 '직장갑질119'에 법 시행 이후 괴롭힘 관련 제보 건수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동안 묻혀 있었던 피해사례들이 양성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긍정적인 분석도 나왔다.


최 노무사는 "괴롭힘은 언제나 있어 왔고, 그게 갑자기 늘어났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측면이 있다"며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을 일들도 '혹시 괴롭힘인가' 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직장문화에 워낙 위계에 의한 갑질이 만연해 있었고, 갑질 근절은 문화를 바꾸는 과정인 만큼 사회 모든 계층이 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괴롭힘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괴롭힘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언론에 소개된 괴롭힘의 유형이나 사례들을 자주 살펴보고, 피해가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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