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상 시작"…韓 "개시 안돼"
트럼프 착오, 특유의 과장 화법, 국내 정치용 발언 관측
美, 방위비·호르무즈·미사일 등 안보 분야 전방위 압박
애스퍼 국방장관, 동맹 강조하며 안보 청구서 들이밀듯
내년 방위비 협상 난항 예상…정부, 美 요구 거절 어려워
전문가 "동맹에 美 과도한 요청 부적절, 정부 신중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7일 오전(현지시간) 트윗에서 한국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힌 뒤 "한국 정부가 미국에 더 많은 방위비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며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아주 조금밖에 돈을 받지 못했다가 내 요구로 지난해 9억9000만 달러(1조2000억원)를 내게 됐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을 정하는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위한 협상이 아직 개시되지 않았다고 즉각 부인했다.
우리 정부의 해명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이 미국에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고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이 지불하는 것에도 동의할 것"이라며 "알다시피 우리에겐 3만2000명의 미군이 한국 땅에 있고 약 82년간 한국을 도와왔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과 달리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시작되지 않았다.
앞서 한미 양측은 1년간 협상을 거듭하다가 지난 2월 '유효기간 1년, 분담금 총액 1조389억원'에 합의한 제10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문에 서명했고, 4월에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유효기간이 5년에서 1년으로 단축돼 내년부터 적용될 협정문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올해에 시작해야 하지만 양국은 아직 차기 협상 대표 인선과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은 협상단조차 꾸리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미 방위비 협상이 시작했다고 잘못 인지했거나 특유의 과장 화법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경선 레이스를 펼쳐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국내 정치용 발언이란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국내 정치용으로 한국을 활용하려는 것"이라면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고 압박하고 여론을 떠보는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에도 "우리가 한국을 방어하는 데 한해 수십억 달러의 엄청난 돈이 드는데 전화 몇 통으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는 돌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또 트럼프가 제시하는 분담금 수치나 주한미군 숫자도 오락가락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30일 방한 당시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주한 미군 숫자가 4만2000명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3만2000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차 SMA 협상을 앞두고 방위비 대폭 증액 방침에 쐐기를 박으면서 내년도 분담금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미국이 무려 50억 달러(약 6조원)의 분담금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도 나돌았다. 우리 정부는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금'을 강조하며 비합리적 수준의 대규모 인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4일 방한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위한 우리 군 파견,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한국에 대한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 참여를 거듭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우리군 파병 문제는 미국의 이란 압박전에 가세하는 모양새로 비춰지고 한국 유조선들이 이란의 공격 타깃이 될 수 있어 우리 정부에 부담이다.
또 미국이 지난 2일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 직후 꺼내든 아시아 지역 내 지상 발사형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와 관련해 에스퍼 장관의 언급이 있을 지 주목된다.
북한 비핵화 국면에 한일 갈등, 중·러 군용기 도발까지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력이 시급한 우리 정부는 미국이 들이미는 안보 청구서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
신 센터장은 "한미 동맹을 언급하면서 과도한 요청을 하는 것은 동맹으로서 부적절하다"면서 "미국과 협상을 해서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분담금을 합의해야 한다. 한미 동맹이 필요한 만큼의 현실적 지원을 해줘야 하며 정부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hoon@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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