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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방지법, 사각지대 국회 적용시 조기총선 치러야"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6 15:29

수정 2019.07.16 15:29

-국회 일부 보좌진, '사노비', '종신 노예계약' 관계
-다양한 갑질행위에도 "나만 참으면 돼"
-의원 중심의 수직적 근무생태계가 문제 키워
"괴롭힘 방지법, 사각지대 국회 적용시 조기총선 치러야"

#ㄱ의원실 7급 비서인 A씨는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의원실 수석보좌관 B씨가 A씨에게 자신의 아버지 칠순잔치 행사 사진을 촬영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B 보좌관은 평소 의원을 수행하면서 행사 사진을 찍어왔던 A씨를 자신의 사적인 일에 동원시킨 셈이다. A씨는 '이런 일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꾹 참고 셔터를 눌렀다.
#ㄴ의원실 6급 비서인 C씨는 의원 지시로, 의원과 가까운 지인들의 국내여행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의원의 친구들이란 이유로, 지역구민도 아니고 상임위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가이드로 나선 C씨는 본연의 일은 못하고 여행일정 짜기와 맛집을 검색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고 국회의원 입법보좌라는 자긍심이 쪼그라들며 처량했다고 토로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되지만, 정작 법을 만드는 국회는 사각지대로 분류된다.

의정활동을 감안해도 일부 의원은 자신의 보좌진들에게 주말 근무를 강요하면서 한달에 이틀 이상 쉬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5일은 커녕, 주6일도 지켜지지 않기가 부지기수다.

■사노비, 종신계약..괴롭힘금지법 사각지대
이외에도 '의원 가족들 일정 수행, 취미생활 보조, 임신 여직원 해고, 의원 집 인터넷 설치, 구두 닦이, 의원 집 개밥 주기' 등 법 위반 추정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보좌진들 일부는 스스로를 '사노비' 내지는 '종신 노예계약'관계라 부른다. 본인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사표를 쓰거나 의원이 자르지 않는 이상 자존감 떨어지게 하는 각종 불합리한 지시나 오더를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생계형(?) 몸종쯤으로 여기는 셈이다.

상당수 보좌진들 중에 큰 포부를 갖고 국회에 들어왔지만 정작 맡은 업무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집사역할이나 단순 업무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일부 보좌진의 경우 주말인 토, 일요일에도 지역구 의원 사무실로 출근해 지역구 업무를 챙겨야 한다. 국정감사때는 밤새기 일쑤고, 그렇다고 대체 휴일을 쓸 수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가 본격 도입되어도 의원 중심의 수직적 근무생태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주 52시간 근무제는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기업처럼 노조를 결성해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정당별로 보좌진협의회가 있지만, 갑질 등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법적용 논란 확산..조기 총선(?) 우려도
하지만 괴롭힘 금지법 적용 여부를 놓고 이견차가 크다. 고용노동부에선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 모두 정무직 공무원이란 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놨으나, 원칙적으로 공무원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추후 논란이 예상된다.

일단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모호성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회 보좌진에 대한 법 적용 가능성도 논란 대상이다. 국회 업무 특성상 업무의 범위를 뚜렷하게 구분짓기가 쉽지 않아서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에서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했다.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말 그대로 폭행, 폭언, 협박, 조롱 등 직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또 상급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나 병가를 쓰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직원과 차별해 허드렛일만 시키는 경우, 사적 심부름 등 개인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익명을 요구한 보좌관은 "보좌진은 별정직이라 의원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 좋든 싫든 버티려면 해야 한다"며 "무엇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들어왔다면 눈감고 그냥 참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아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국회에 전면적으로 적용된다면 안 걸릴 의원들이 없다"며 "우스갯 소리로 조기총선을 해야 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보좌진 업무 특성상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 시행 초반 법 적용 해석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혼선이 우려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의원들과 보좌진들 모두 공무원이기에 괴롭힘 금지법 적용대상이 되지않는다"며 "공무원이란 신분 특성상 이 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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