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저평가된 화백 '곽인식' 탄생 100주년 대규모 회고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2 18:06 수정 : 2019.06.12 18:06

국립현대미술관, 6월 13일~9월 15일 과천관 개최



곽인식, 작품 63, 1963, 유리, 72x10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fnDB

곽인식, 작품 61-100, 1961, 52x73cm, 패널, 석고, 선글라스, 유족 소장 /사진=fnDB

곽인식, 작품 85-2-2, 1985, 종이에 채묵, 162x24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fnDB


“미술관 역대 전시 중 최다인 100여점을 훈증 처리, 최종 48점을 복원했다. 이는 대중들과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는 뜻일 게다. 이번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곽인식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일본 미술계를 중심으로 활동해 국내에서 조명될 기회가 없었던 곽인식(1919-1988) 화백의 작품이 탄생 100주년 회고전을 통해 관람객과 만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곽인식’전을 6월 13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국내와 일본에 소재한 곽인식의 작품 100여 점과 미공개 자료 10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곽인식은 사물과 자연의 근원을 탐구한 선구적인 작업 세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예술적 성과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저평가됐다.

■ 물성에 주목한 전위적 작품, 일본과 국내 화단에 영향

경북 달성군 출생인 곽인식은 1937년 도일해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귀국 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1949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전 50여 회를 갖는 등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유리, 놋쇠, 종이 등 다양한 소재를 실험하며 시대를 앞서 간 작업을 보여줬다. 현대미술의 ‘물성(物性)’과 관련해 서구에서는 1960년대 후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일본에서는 1970년대 모노하(物波, School of Things)가 국제적인 흐름에 조응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데, 곽인식의 작품은 이를 훨씬 앞선 것이었다.

곽인식은 1960년대 초반부터 사물과 자연의 근원적 형태인 ‘점, 선, 원’에 주목해 물질을 탐구했으며 1970년대 모노하를 견인한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작가의 후반기 채묵화 작품 위주로 몇 차례 전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1975년대 곽인식이 본격적으로 사물의 물성을 탐구한 시대를 집중 조명한다.

"우주 속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물이 존재한다...나는 일체의 어떤 표현행위를 멈추고 사물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곽인식, '사물의 언어를 듣다', 미술수첩(1969))

전시는 곽인식의 작품세계를 193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조망하는데, 두 번째 ‘균열과 봉합(1960년대~1975년)’에 해당되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이 시기, 원색의 물감에 석고를 발라 두터운 질감을 표현한 모노크롬 회화로부터 캔버스에 바둑알, 철사, 유리병, 전구 등과 같은 오브제를 부착하고, 이후에는 유리, 놋쇠, 철, 종이 등 재료 자체에 주목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곽인식 작품 행위의 분수령이 된 깨뜨린 유리를 붙여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제시한 작품들(1961-63년)을 집중 선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비록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나 좌우익의 대립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난관을 ‘균열’로 인식하고‘봉합’으로 극복하려는 작가의 태도와 의지를 반영한다.

실제로 이 시기 곽인식은 남북통일활동에도 앞장섰다. <평화통일 남북문화교류촉진문화제>(1961)에 참여하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계열의 미술가협회가 연합한 <연립미술전>(1961)을 기획했다.

1969년에는 종이를 ‘원’의 형태로 조심스럽게 자른 작업을 선보이는데 이때 종이의 ‘원’은 평면이나 조각이 아닌 물질 자체로 제시된다.

‘현실 인식과 모색(1937년~1950년대 말)’에서는 곽인식의 초기작 <인물(남)>(1937), <모던걸>(1939)과 패전 후 일본의 불안한 현실을 반영한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 1955>(1955) 등을 소개한다.

‘사물에서 표면으로(1976-1988년)’에서는 돌, 도기, 나무, 종이에 먹을 활용한 작업을 소개한다. 1976년 이후 작가는 강에서 가져온 돌을 쪼개어 다시 자연석과 붙이거나 손자국을 남긴 점토를 만들고, 나무를 태워 만든 먹을 다시 나무 표면에 칠하는 등 인간의 행위와 자연물을 합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후기에는 붓으로 종이에 무수히 많은 색점을 찍어 종이 표면 위에 공간감을 형성한다.

곽인식 전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사진=fnDB

곽인식 전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사진=fnDB

곽인식 전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사진=fnDB

■ 재일한국인 한계, 일본 미술계에서 저평가돼

이번 전시에는 작가 사후 오랜 기간 방치됐던 작품을 발굴해 총 48점을 6개월간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복원했다.

또한 곽인식의 조수였던 우에다 유조(갤러리 Q 대표), 후배 작가인 최재은을 비롯해 박서보, 김구림, 곽훈, 김복영 등 평론가,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곽인식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한국미술계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전시와 연계해 열리는 8월 초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오광수(뮤지엄 산 관장), 김현숙(미술사가), 히토시 야마무라(도쿄도미술관 학예실장), 치바 시게오(미술평론가) 등 한.일 연구자 4인이 곽인식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박수진 학예연구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삶과 연동해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볼 수 있게 꾸몄다”며 “작가의 작품 중에서 유리 작품 위주로 선보였다”고 부연했다.

작가가 유리에 주목한 이유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일본경제가 고도성장기 초기에 접어들면서 유리가 등장한 것과 연관이 깊다. 당시 유리는 기존에 없던 신소재였고, 작가는 이 신소재에 매료됐던 것이다.

작가가 재일한국인 신분인데도 계속 일본에서 활동한 이유는 “전위적 작품세계”와 유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진 학예연구관은 “당시 일본은 현대미술을 할 수 있는 나라였다”며 “전위적 작업을 해야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꾸준한 작업 활동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주목받는데 그쳤다. “70년대 중반 자포자기 심정으로 회고전을 열었는데 이때부터 일본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재일 한국인이라는 한계로 예술적 성취에 비해 저평가된 게 사실이고 현지 평론가들조차도 이 점을 반복해 언급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이 총망라돼 그의 예술적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작의욕을 불태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렴풋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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