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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인터뷰]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정치적 중립성보다 '전문성'이 우선"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4 11:36

수정 2019.05.24 11:36

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현안인터뷰]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정치적 중립성보다 '전문성'이 우선"

대담=정인홍 정치부장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 국회입법조사처를 미국 연방의회에 정책자문을 제공하는 의회조사국(CRS) 이상의, 최고의 '전문성'을 앞세운 싱크탱크(think tank)로 만들겠다." 지난 3월 부임한 김하중 신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23일 국회입법조사처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특히 국회입법조사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꼽았다. 지난 2007년 출범한 국회 입법조사처는 올해로 개청 12주년을 맞는다. 국회의원들이 법을 성안할 때 제공해주는 적격성, 현실성, 정책적 기대효과 등을 담은 입법회신요청의 경우 출범 초기에 비해 무려 300% 이상 폭증했다.

입법회신요청 건수가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다변화된 사회와 국민의 삶이 투영되는 정부 정책의 다양성이 날로 늘어났다는 의미다.
다만 법 내용과 취지보다는 일단 성안하고 보자는 식의 '보여주기식' 과잉입법 내지는 법안발의 실적이 의정활동 평가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은 경계한다. 다양화되고 있는 사회현상의 법적 가치를 담은 게 법안인 만큼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전문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게 법조인 출신인 김 처장의 철학이다.

다음은 김 처장과의 일문일답.

―국회의원 등의 입법지원 요청에 대한 회신 시 우선해야 할 가치는.

▲다양한 정당이 모인 국회에서 접수된 입법지원 요청에 대해 회신할 때 무엇보다 정치적 편향성을 갖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게 입법조사처의 숙명적 딜레마다. 실제 입법조사관들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충돌할 때인데 그럴 때는 전문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인위적이고 기계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성을 우선시해 전문적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오히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찬성과 반대 의견을 보고서에 담아야 하는데 전문적 입장에서 보면 찬성에 무게가 더 나가는데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다 보면 찬반 50대 50으로 보고서를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입법조사처의 핵심 기능과 역할은.

▲가장 핵심 업무는 입법조사 요청에 대한 회답이다. 이는 국회 상임위원회 또는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사항을 조사·분석해 회답하는 업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서 착안한 건 맞지만 지금은 우리 입법조사처가 더 위상이 높다. 입법조사처는 당초 국회 도서관의 일부 기능에 포함됐지만 현재는 독립된 기관으로 입법지원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CRS는 여전히 국회도서관 소속이고 독립된 기관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장 늦게 출범했지만 명실상부한 최고의 입법정책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해 모든 임직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입법조사처의 기능은 어떻게 진화돼 왔나.

▲설립 초기인 2008년에는 입법 회신건수가 약 2000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6995건으로 약 7000건까지 3배 이상 늘어났다. 이 기간 누적건수는 6만건을 넘었다. 장족의 발전이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양적 발전을 했지만 이제는 열두 살이 된 만큼 질적 발전을 이뤄낼 때라고 본다.

―질적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바로 사전적 입법영향분석 업무다. 입법지원 서비스를 미리 사전에 입법효과를 예측하고 진단하고 분석해서 입법이 되는 게 바람직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다만 조금 조심스러운 측면은 이 같은 사전 입법영향 분석이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에 혹시나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 이 부분을 고려해 '상임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라는 요건을 달고 해당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한다. 사전적 입법영향분석은 입법서비스를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매우 필요한 제도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세계 각국의 입법지원기관과 교류 현황은.

▲매년 세계 각국의 입법지원 기관 간 교류의 장(場)인 국제 콘퍼런스가 열린다. 올해는 11월 개최되는데 입법에 대한 세계적 추세, 각국이 보유한 입법관련 정보, 기타 협력해야 할 일들을 공유하는 자리다. 이를 통해 해외 관련기관과 두꺼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제적 협력기반을 계속 확충해 나가는 게 우리 업무 중 하나다. 또 유럽연합(EU)의 입법조사기관(EPRS)에서 우리 국회입법조사처를 초청, 올 9월 벨기에의 EPRS를 방문해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최근 들어 올해 4월에는 양해각서(MOU) 체결기간이 만료된 일본 측과 MOU 연장을 하기도 했다. 일본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이 많이 얽혀 있지만 양국 간 입법지원 서비스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조사처의 전문인력 확충 현황은.

▲미국 CRS와 같은 싱크탱크 역할을 지향하는 만큼 조직규모나 예산 면에서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입법조사처 인력은 126명이고, 연구직을 포함하면 169명이다. 국내 조사연구기관 중 국가정책과 입법의 전 분야를 조사·분석하는 기관으로는 유일한데도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직 전문성과 안정성 확보도 인력 확충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이전에는 연구직 공무원들이 보직을 못 맡아 이직률이 높은 게 큰 문제였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으로 오는 10월부터는 연구직 공무원들도 팀장과 실장까지 승진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됐다. 이달 28일에는 그동안 업무협력 관계에 있던 대한변호사협회 측과 공식적으로 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이번 MOU 체결을 계기로 법률전문가 집단인 대한변협과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졌다.

―본지와 공동주최하는 '입법 및 정책 제안대회'는 어떻게 준비 중인지.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공모해 이를 정부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뜻깊은 행사다. 앞으로는 이 대회에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도 참여시킬 생각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주도적으로 잘 표현해 놀랄 때가 많다.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공모해 국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에 반영한다는 대회의 본래 취지를 위해서라도 초등학생들까지 참여시킴으로써 어려서부터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본다. 올해부터는 각 교육청에 홍보를 강화해 초·중·고등학생이 함께 참여해 학생들 눈높이에서 필요한 법안이 나올 수 있는 창구를 만들도록 하겠다.

―검경수사권 조정 등 민감한 쟁점현안에 대한 조사 요청은 없나.

▲조사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니고 있는 기관 특성상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특정 의견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각 쟁점사안에 대해 해외 사례는 어떤지, 또 각 기관들이 내놓은 의견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등은 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검경수사권 조정안만 보더라도 검찰과 경찰은 각각 서로 본인들에게 유리한 해외 사례와 설명부분만 발췌해 인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처는 전체적 해외사례를 조사해 특정 집단에 유불리한 부분이 아닌, 정치색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조직 운영에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제가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했던 대목은 구성원 간에 '화합'과 '협력'이다. '화합'은 조직을 꾸려나가는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입법조사처는 인력구조 특성상 연구가 집단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혼재돼 있다. 두 집단 간 갈등을 없애고,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조직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이전에는 연구직들은 보직을 받지 못해 내심 불만이 있었는데 국회법 개정으로 이 부분은 해소가 됐고, 이는 조직 화합을 위한 첫발이라고 생각한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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