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전쟁터' 명함마다 다 부장..혹시, 나만 진급 못하는걸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5 17:45 수정 : 2019.05.15 17:45

서열 문화가 만든 '직급 뻥튀기'
상대에 격식, 무시 안당하려 과장·부장 직급 등도 남발
한국만의 계급 중시 문화..허위직급 체계 만들어 내

#.얼마 전 영업파트로 자리를 옮긴 직장인 윤모씨(30)는 업무를 위해 대기업 거래처 직원들을 만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20대 초반의 앳된 직원이 대리라며 인사를 건네왔기 때문이다. 이후 상대 측과 업무 관련 이야기가 오가며 윤씨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대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상대방의 업무 이해도 탓이었다. 윤씨는 "대리는 커녕 사원이나 인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업무이해도 였다"며 "영업파트로 오기 전 '직급 뻥튀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직급 뻥튀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나타나는 직급 뻥튀기는 신뢰가 우선시 돼야 할 거래처 간의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직급 뻥튀기는 거래처 등 외부 업체와 만나는 일이 잦은 업종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유도 다양하다. 때로는 상대방 업체에 대한 격식을 차리기 위해, 때로는 상대방 업체로부터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직급을 부풀린다. 사원은 대리로, 대리는 과장으로 직급을 올려 부르는 식이다.

■불신 야기하는 '직급 뻥튀기'

이 같은 직급 뻥튀기가 일반화되자 몇몇 업체는 아예 승진까지 걸리는 시간을 눈에 띄게 단축시켜 실제로 직급을 올리기도 한다.

일례로 대외 업무가 많은 한 회사는 입사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에게도 대리 직급을 부여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대리 직급을 달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인 셈이다. 패션, 뷰티 업계에 종사 중인 박모씨는 "업무 상 다른 회사 사람들과 만날 때 항상 직급 뻥튀기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나간다"며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직급을 부풀리다보니 '나만 안올리면 바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박씨는 이어 "사실 직급을 높인다고 해도 실제로 만나보고 몇분만 이야기해보면 상대방이 직급을 뻥튀기했는지 아닌지 바로 드러난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 업계나 몇몇 업계에선 어쩔 수 없는 관행처럼 자리잡아 서로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직급 뻥튀기가 한국의 특수한 문화가 낳은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형 계급사회의 그림자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거 군대나 학교에 있었던 한국 사회만의 서열주의 구조가 회사에도 적용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내 직급이 낮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직급에 맞춰 대우를 해준다거나, 혹은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거나 하는 생각 하에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특유의 서열 구조화 문제, 계급 중시 문화가 직급 뻥튀기로 변모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 연구원은 직급 뻥튀기는 도제식 교육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업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전했다.

특히 업계 특성 상 인턴 직원이 많은 업체들은 이들에게 특정 직급을 부여함으로써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인턴에 대한 수요가 많은 패션·뷰티업계의 경우 인턴들에게 보상심리와 자부심 등을 부여하기 위해 직급 뻥튀기를 이용하기도 한다"며 "이런 업종의 경우 정규직을 바라는 인턴들의 갈망을 이용하려고 허위 직급 체계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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