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배당은 절대선인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1 16:19 수정 : 2019.03.11 16:19

마다할 투자자들 없지만 지나치면 장기전략에 독
개별기업 선택에 맡기길



3월 하순 주주총회 시즌이 코앞이다. 올해는 '통 큰' 배당이 이슈다. 한국 기업들은 수십년간 짠돌이 배당으로 정평이 났다. 올해는 다를 것 같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배당률을 높일 작정이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을 의식한 결과다. 매출 30대 기업만 보면 이미 배당성향(배당금/순이익)이 40%에 육박해 국제 수준과 비등하다는 분석도 있다. 30대 기업이 전체 상장사 배당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올해는 투자자들의 주머니가 제법 두둑해질 것 같다.

배당을 더 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할까. 그렇다고 배당이 절대선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배당을 높이면 개미 투자자보다 기업 총수가 더 신이 난다. 기업 실적을 평가하는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개인별 배당금 1위는 단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은 배당금으로 4747억원을 받는다. 작년(3063억원)보다 55% 많다. 2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작년(1160억원)보다 20.6% 많은 1399억원을 받는다. 3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이렇다 보니 배당금을 거절하는 총수도 있다. 지난달 남양유업은 배당률을 높이라는 국민연금의 제안을 걷어찼다. 남양유업은 국민연금이 관리하는 저배당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회사는 최대주주이며 오너인 홍원식 회장의 지분이 약 52%에 이른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치면 홍 회장 일가의 지분은 54%에 육박한다. 배당률을 높이면 절반 이상이 총수 일가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남양유업은 "그동안 회사 이익을 사외로 유출하기보다 사내유보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장기투자를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해 왔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지분율 6.55%)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총 8조원 넘는 배당을 요구했다. 우선주를 포함해 현대차에 요구한 배당금 5조8000억원은 주당 약 2만2000원에 해당한다. 현대차가 제시한 주당 배당금 4000원의 5배가 넘는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의 반응이다. 글래스루이스는 엘리엇의 배당금 제안에 주주들이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엘리엇의 요구가 현대차의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흔히 미국을 배당천국으로 알지만 예외도 있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창업주는 배당을 더 달라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고집스럽게 거부했다. 기업이 번 돈은 미래 투자를 위해 쓰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잡스는 장기투자로 주가가 오르면 결국 투자자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간다고 믿었다. 잡스 뒤를 이어 애플의 지휘봉을 잡은 팀 쿡은 무배당 정책을 깼다. 쿡 CEO 아래서 애플 주가는 꾸준히 올랐으나 최근 주춤한 모양새다. 폴더블폰 경쟁에서도 삼성과 화웨이에 선두를 내줬다. 애플의 배당정책이 장기경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앞으로 증시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될 듯하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시행하면서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사실상 기업에 배당을 더 하라는 뜻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적자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국내 주식투자 부문에서 손해가 컸다. 배당을 늘리라는 압력이 갈수록 거세질 듯하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투자전략일까. 짧게 보면 이익이지만 길게 보면 손해가 아닐까. 적어도 '국민' 연금이라면 좀 더 긴 호흡으로 투자전략을 짰으면 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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