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J노믹스,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4 17:15 수정 : 2019.03.04 17:15

실패방지 노력을 제대로 안해
어설픈 대응이 포용실험 망쳐
지킬 가치 있는지 자문해봐야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문에는 최저임금이란 단어가 딱 한번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대목이다. 문정부의 경제정책(J노믹스)에서 최저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 최저임금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이 긍정론에서 부정적 관점으로 바뀐 첫 사례였다.


1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대통령의 발언은 전혀 달랐다. 2018년 1월 10일 취임 후 첫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가계소득을 높여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느 기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에 대해 물었을 때도 자신 있게 답했다. "일시적으로 일부 한계기업이 고용을 줄일 가능성은 있지만 정착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16.4%나 오른 최저임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대통령은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확신은 물거품이 됐다. 고용은 빠른 속도로 위축됐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매달 관련 통계가 나올 때마다 홍역을 치렀다.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이 나빠지고, 가계소득이 계속 줄어들면서 소득주도성장의 기반도 무너졌다. 결국 J노믹스는 설 자리마저 잃게 됐다. 실패한 정책을 해부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을 되짚어봐야 한다. 실패를 막을 수 있는 시점이 언제였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게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5월 말 1·4분기 가계소득 통계가 나왔을 때다. 당시 최하위 20%의 가계소득이 전년보다 8%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 대통령은 처음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이는 우리에게 아픈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뒤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을 바꿨다. 이 말 한마디가 J노믹스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대통령의 말이 바뀐 배경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가 통계 내용을 입맛에 맞게 변조한 새 자료를 내밀었다. 대통령은 그 때 그에게 "통계를 탓하지 말고 관련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보라"고 말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운 수렁 속으로 들어갔다. 가계소득 통계의 편제를 바꾸고, 통계청장까지 교체했다. 정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정책을 보완할 생각은 안하고 통계 탓만 했다.

대통령의 정책을 굳건히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 야권과 언론으로부터 쏟아지는 비판과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책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판단도 있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빈부격차 해소를 핵심가치로 추구해왔다. 지난 1년반 동안 추진한 정책의 결과는 이런 핵심가치와 부합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참모들은 당연히 의문을 가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어떤 고민이나 판단 없이 저소득층의 고통을 키우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소득주도성장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어설픈 대응이 의미 있는 실험을 망쳤다. 소득주도성장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실패 자체보다 실패가 예견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방지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이 더 나쁘다. 정책은 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J노믹스의 또 다른 축인 혁신성장에서 반전의 기회를 찾기 바란다.

염주영 논설위원 y198301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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