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정부 경제전망 신뢰성 논란] "한국경제, 겨울이 오고 있다"… 내년 계획 못잡는 기업들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04 17:18

수정 2018.11.04 21:00

1. 기업경영 시계제로
무역전쟁에 수출 비상
호황 반도체마저 투자 축소..현대차·LG도 전략 원점검토
소득주도성장도 불안
근로시간 단축 등 경영 위협..급진적 정책 경기침체 초래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앞으로 다가올 예측불허의 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한 미국 유명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명대사다. 불행히도 이런 상황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생산, 투자, 소비 등 핵심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하향세를 보이면서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퍼펙트 스톰(위기가 복합적으로 도래하는 현상)'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또다시 몰아치고 있다. 일각에선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한국 경제위기의 '10년 주기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2%대 성장률이 고착화되는 추세적 경기하강에 진입했다는 경고를 잇따라 던지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정부 경제전망 신뢰성 논란] "한국경제, 겨울이 오고 있다"… 내년 계획 못잡는 기업들

"내년 경영계획을 아직까지 확정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년은 분기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대기업을 담당하는 경제단체 한 임원은 최근 만난 삼성전자 관계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임원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마저도 내년 경영시계가 불확실하다고 하니 다른 기업들은 오죽하겠느냐"며 "경제를 이끄는 대기업들에 내년은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대 위기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국 경제의 선봉장인 대기업들이 미·중 무역전쟁과 내수침체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내년도 사업방향의 키워드를 '긴축경영'으로 잡았다. 주요 기업마다 여러 경영변수로 내년 사업계획 확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투자 집행은 올해보다 축소 기조가 뚜렷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경제전망 신뢰성 논란] "한국경제, 겨울이 오고 있다"… 내년 계획 못잡는 기업들

■'투자 줄여라' 긴축경영 확산

4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10대 그룹 대부분이 내년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들이 연말 정기인사 전인 10~11월에 다음 해 확정계획을 수립하는데 올해는 잠정계획 정도만 나온 상황"이라며 "미·중 무역분쟁, 미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통화 약세, 중국의 저성장 진입, 북핵 문제 등 굵직한 글로벌 이슈들이 많아 대기업 전략부서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요 대기업들은 투자 축소 등 내년 비상경영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사상 최대 호황인 반도체부터 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31조8000억원가량으로 잡았다. 이는 지난해 43조4000억원 대비 26.7% 감소한 수치다. 물론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평택 10나노 파운드리 증설라인 구축이 완료된 이유가 크지만 내년 반도체 시황도 투자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3·4분기까지 36조8100억원의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한 반도체 업황이 4·4분기부터 일시적으로 꺾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관계자는 "4·4분기는 메모리 부품의 계절적 비수기로 반도체 시황이 둔화돼 전사적 실적하락이 예상된다"며 "심리적 요인과 고객사 재고 수준, 수요 계절성, 수급시점 차이에 따라 내년 1·4분기까지 일시적 수급불균형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내년 투자 기조를 올해와 비슷하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내년 투자전략을 긴축으로 정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3·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세계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아직 해소되지 않은 재고를 고려하면 내년 투자지출은 올해보다는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6조원 수준의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판매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차도 내년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 3·4분기 영업이익이 2000억원대까지 곤두박질친 데다 주요 시장인 북미와 중국에서 부진을 겪으면서 내년도 사업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짜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검토 중인 것도 국내 업계의 큰 골칫거리다.

LG는 대외적 경영변수에다 계열분리 이슈까지 남아있어 내년도 그룹 차원의 경영계획 확정까지는 유동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물러날 예정인 구본준 부회장이 어떤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떼어 나갈지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와 내년도 경영방향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LG는 내년에 대외변수와 내실 안정화에 모두 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소득주도 성장 '기름부은 격'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경제의 위기를 일시적이 아닌 추세적 국면으로 보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는 이미 2017년 2·4분기를 정점으로 1년 이상 경기 하강국면에 위치하고 있다"며 "2019년에는 세계 경제둔화로 수출 증가세가 약화되고, 투자 감소 등 하방 리스크로 최소한 내년 6월까지는 경기 하강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외 불확실성에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기업들의 내년 경영위기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와 지난해를 보면 대외여건은 사실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급격하게 변한 건 정부 정책뿐인데, 그렇다면 지금의 경기침체는 정책실패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은 비가역적인 정책들이라 변동성이 어려워 경기하강 시 장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많은 요인들"이라고 덧붙였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