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술 이야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1 17:18 수정 : 2018.10.01 17:28


가을에는 술이 잘 익는다. 옛 선비들은 가을만 되면 산과 들에 핀 노란 들국화로 화전을 부치고 술을 담가 국화주를 즐겼다. 동국통감, 동인시화 등을 펴낸 조선 초기 최고 문장가 서거정은 '오솔길에 국화를 처음 옮겨 심어 가을에 국화주를 마실 수 있으니 거문고를 안고 오라'는 멋진 글을 벗에게 띄우기도 했다. 요즘처럼 주류공장 대형탱크에서 사시사철 생산되는 술과는 다른 예스러움이 가을 국화주에는 담겨 있다.


공식석상에서 한잔의 술은 어색해진 만남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선지 남녀 간 첫 만남이나 중요한 모임에선 와인이 중재자 역할을 많이 한다. 최근 치러진 남북정상 평화회담이 열린 평양 목란관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와인과 평양소주 등으로 만찬주를 했다.

술 한잔이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선 와인을 예수의 피라고 여기기도 한다. 죽음을 예감한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제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식을 가졌다. 예수는 포도주를 따라주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언급했다. 예수가 알려준 성찬의식은 지금도 전 세계 교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명절 제사상에도 항상 술이 정성스럽게 올라온다. 아쉬운 점은 구한말까지 제사상에 올라오던 막걸리 대신 요즘엔 일본의 사케인 정종이 제사상을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쌀 부족으로 막걸리 양조가 금지됐고, 이후 14년 만에 금주령이 풀렸지만 그사이 일본 정종이 고급술로 인식되면서 우리 제사상을 파고들었다. 막걸리 인기 덕분인지 요즘엔 차례주로 다시 막걸리를 올리는 가정이 꽤 늘어서 다행이다.

술자리가 정권을 바꾸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79년 10월 말 가을 밤에 가진 궁정동 술자리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술친구는 가급적 입이 무거운 친구가 좋다. 입이 가벼운 술친구가 이리저리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발설하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향후 큰 다툼의 불씨가 된다.

문 대통령의 술버릇은 반려견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생활을 하기 전, 늦은 밤에 기분 좋게 술 한잔 하고 귀가하면 외출복을 그대로 입은 채 반려견인 풍산개 마루와 마당에서 뒹굴고 누워서 달구경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고 발설하지 않으니 입 가벼운 사람보다 나은 술친구일 수도 있다.

술 한잔이 국민의 시름을 달래기도 한다. 소주 한잔에 따뜻한 순댓국 한 끼가 허기진 노동자들에겐 말 없는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선지 서민의 술인 '참이슬'과 '처음처럼' 가격이 10원이라도 오른다고 하면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올가을에는 한잔 소주가 쓰지 않게 온 서민경제가 술술 잘 풀렸으면 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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