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보물선에 실린 '헛된 희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5 17:22 수정 : 2018.08.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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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왔던 ○○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릴 적 장난처럼 불렀던 각설이타령이 아니다. 십수년 만에 돌아온 돈스코이호 얘기다. '200t, 약 150조원어치의 금괴가 실려 있다'는 보물선 소동이 망령처럼 되살아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돈스코이호는 지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과 싸우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이다.
이 배에는 금화와 백금괴 등 엄청난 규모의 보물이 실려 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1981년 도진실업이라는 회사가 매장물 발굴허가 등을 얻어 돈스코이호 탐사에 나섰지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1999년 8월에는 동아건설이 돈스코이호 탐사에 뛰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금이 귀했던 시기였고, 부도 위기에 몰려 있던 동아건설 입장에서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물선 탐사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동아건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0년 12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무려 17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내달렸다. 하지만 2001년 6월 동아건설은 끝내 파산선고를 받았고, 상장폐지됐다.

동아건설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배를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2003년 5월이었다. 채권단의 반대로 인양은 하지 못했다. 2014년 발굴 허가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동아건설의 돈스코이호 탐사도 막을 내렸다. 돈스코이호에 정말 보물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도 확인된 바 없다.

십수년이 훌쩍 흐른 지난달 중순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며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DONSKOII'라는 이름이 선명한 영상도 공개했다. 코스닥 상장사 제일제강이 관련주로 주목을 받았고, 2000원을 밑돌던 주가는 단숨에 5000원을 넘었다. 금융감독원이 경고 신호를 보내자 주가는 다시 추락했다. 주목할 부분은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이미 지난해부터 보물선에 있는 금괴를 담보로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 '신일골드코인'을 내다팔고 있다는 점이다. 인양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이다.

여기저기서 투자사기 의혹이 제기되자 신일그룹 측은 부랴부랴 기자간담회를 열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확산됐을 뿐이다. 결국 경찰이 나서 신일그룹 경영진을 출국금지시키고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에 참 미친 사람 많다" "보물선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코스피지수 3000을 바라보며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치는 마당에 여전히 이런 허무맹랑한 '설(說)'에 시장이 휘둘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과거보다 일찍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것에 위로받아야 할까.

투자는 개인의 선택이며, 그 책임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개인의 현명한 투자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보물선까지 끌어들여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부의 투기적 행태가 그저 씁쓸하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꿈을 먹고 산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해당 종목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 하지만 허황된 꿈, 그릇된 미래는 상처만 안겨줄 뿐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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