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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벨트'를 가다] 정권 바뀔 때마다 흔들.. ‘균형발전’ 컨트롤타워가 없다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6:45

수정 2018.04.15 21:44

<2부> 지역정책 '절반의 성공' (3) 지역산업 총괄부처 안보인다
새 정권 들어설 때마다 새 산업..부처마다 주력사업에만 국고집중
일관된 정책 없어 산업흐름 놓쳐..전통 산업도시들 ‘예고된 몰락’
지자체 역량 키우고 권한 나눠야
중앙정부가 사업계획 수립하면 지방정부는 자금집행 역할만 맡아
지역이 필요한 사업 지역에 맡겨야
#.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A 사무관은 몇 년 전 2년여간 한 광역시에 파견돼 창조경제혁신센터 육성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평소 연구개발(R&D) 분야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역에 거점을 둔 공공기관, 기업 등과 협업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정책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회의를 거친 끝에 그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자유공모에 지능형센서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지역의 미래먹거리라고 확신해 분석을 거듭한 만큼 사업이 선정될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대한민국 '러스트벨트'를 가다] 정권 바뀔 때마다 흔들.. ‘균형발전’ 컨트롤타워가 없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정부 과제로 선정되지 못했다. 중앙부처에서 사업의 타당성에 의구심을 보이며 퇴짜를 놨기 때문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다시 중앙부처로 돌아온 그는 "나중에 알아보니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사업의 이해도가 달랐던 게 원인이었다"며 "부처마다 기존에 만들어놓은 예산 지원기준이 있었다. 지역에서 바라는 사업과 중앙정부가 원하는 사업이 잘 맞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업으로 제출해도 중앙부처는 기존 사업의 연장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의 특성을 고루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도 반영됐다.

A 사무관은 "그나마 광역시 정도면 연구단지도 갖춰져 있고, 거점대학이 있어 R&D 기획력이 나은 편"이라면서 "소규모 지자체 같은 경우는 R&D 기획력이 굉장히 열악하다. 이 같은 지자체 간 역량 차를 해소시킬 수 있는 중앙부처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경쟁적으로 지역 전략산업 육성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역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부처마다 주력하는 사업에 국고 지원을 집중하다보니 지역산업 육성과 관련, 정부가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과 논문, 중소기업벤처부와 교육부는 각각 중소기업과 대학 육성 등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 추진도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초기 대량생산 시대에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최근 4차산업으로 대표되는 산업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경쟁력이 점차 뒤떨어지고 있다. 대구의 섬유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제철업과 조선업이 몰락한 미국 피츠버그와 보스턴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각각 제약산업과 바이오산업 육성에 성공한 것과 대조적 모습이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지자체가 산업을 전환시킬 만한 역량과 권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계획을 수립하면 단순 자금집행 역할 정도만 맡다보니 자체적으로 지역산업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 온 탓이다.

이두희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연구실장은 "대기업 본사에 R&D 기능이 집중돼 있는 것처럼 국가도 모든 권한과 기능을 중앙정부가 다 갖고 있다"면서 "4차산업 시대로 전환되면서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구성됐던 한국의 '러스트벨트(제조업 쇠퇴지역)'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지역에 필요한 사업은 지역이 가장 잘 안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부의 지역산업 정책을 들여다보면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참여정부에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해소에 주력했다. 지방 산업기반 확충을 위해 시도별 4개의 전략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전국에 100여개 각종 R&D 센터를 설립해 지방의 신산업 육성을 도모하는 한편, 신활력사업을 통해 낙후지역 활성화를 지원했다. 그러나 지역 간 중복투자 및 성과창출 부족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지역 산업정책 컨트롤타워의 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기초-광역-초광역'으로 이뤄진 3차원 지역발전 전략을 중심으로 첨단의료 복합단지, 과학벨트 등 대형사업을 추진했다. 아울러 5+2 광역경제권을 핵심 지역정책으로 추진하고 선도산업, 선도산업 인재양성, 30대 선도프로젝트를 통해 지역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했다.

하지만 3차원 지역발전 전략사업은 재원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체계마저 구축되지 않아 사실상 실행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광역경제권을 제외한 기초생활권, 초광역개발권은 계획 수립 단계조차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지역별 편차가 심했다.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취약한 탓에 지역정책과 대형 국책사업의 연계가 미흡해 주요 지역개발 프로젝트가 개별적으로 추진되기까지 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실종됐다. 당초 관련 사업 총괄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였다. 그러나 '창조경제' 구호 아래 실세 부처로 인식된 미래창조과학부 등 타 부처로 관련 권한이 이양되기 시작하면서 지역산업 육성정책의 일관성이 단절됐다. 이는 각 사업의 타당성 및 중복성을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도 취약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사업이 차별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정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사업이 도입됐다가 몇 년 후 다른 사업과 통폐합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 실장은 "기업들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산업부는 기술사업화의 의지가 강했던 반면 당시 미래부는 특화산업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도 지역 한계기업 생명 연장을 위한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지역산업 전환을 유도할 수 있었을 시기에 부처로 권한이 나눠지면서 산업부가 R&D 기능이 제일 떨어지고, 관련 예산도 가장 적은 부처로 전락해버렸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차장(팀장) 김아름 김용훈 예병정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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