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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 버티다 버티다 경매 나온 공장.. ‘실직공포’에 짓눌린 산업도시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0 17:09

수정 2018.04.10 21:14

<1부> 산업화시대의 지역성장전략 한계 (2) 경상권  제조업 무너진 포항.구미.창원
철강 美관세폭탄 떨어진 포항
최악 피했지만 강관류 쿼터제 도입 타격.. 제품으로 가득찼던 마당은 텅 빈채 썰렁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떠난 구미
대기업 떠나간 자리에 중소기업만 들어와.. 산업단지 마땅한 투자 없어 미분양 사태
쇠락하는 대표 공업도시 창원
향토기업 환웅그룹의 부도 거센 후폭풍, 혁신 꾀하기도 어려워.. 투자만 기다릴 뿐
조선업 장기불황에 휘청이는 영암
일감 따라 사람 모였다 흩어지는 도시.. 대기업 물량 기다리다 도산한 기업 수두룩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위치한 철강 강관업체 중앙스틸코리아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채 굳게 출입문이 닫혀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위치한 철강 강관업체 중앙스틸코리아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채 굳게 출입문이 닫혀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스틸플라워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채 굳게 문이 잠겨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스틸플라워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채 굳게 문이 잠겨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경북 구미시 4국가산업단지 인근 한 실내 포장마차 출입구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경북 구미시 4국가산업단지 인근 한 실내 포장마차 출입구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 포항.구미.창원.영암=특별취재팀】 지난 3월 28일 포항시 남구 철강산업단지. 포스코 등 글로벌 철강기업의 기반산업이 몰려 있는 이곳의 공기는 무거웠다. 300개가 넘는 기업들이 한데 모인 곳이지만 간간이 지나가는 트레일러 트럭과 도로공사 작업을 하는 인부 몇 명을 제외하면 인적을 찾기 어려웠다. 생산라인이 한창 돌 때인 오후 3시께도 몇몇 공장의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다. 알짜 강관 제조업체였던 중앙스틸코리아 포항공장도 경매로 넘어간 채 적막 속에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국제강은 2012년 제1후판공장을 폐쇄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제2후판공장의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한 채 설비매각 등을 추진 중이다.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 최근까지 단지 입주업체와 협력업체 직원들 수백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 상당수는 포항을 떠나 후판공장이 있는 당진이나 창원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최명진 과장은 "비워진 공장 상당수는 경매가 진행 중이지만 나간 자리가 빠르게 채워지지 않고 있다"면서 "철강경기 둔화에 일거리가 줄어들자 업체들이 인건비 부담을 덜고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며 실직자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美 관세 '강펀치'에 휘청이는 철강산업

최근 미국이 한국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부과를 유예하면서 철강업체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여전히 관세가 유예됐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 '관세폭탄'의 최대 피해자인 세아제강, 휴스틸, 넥스틸 등 강관업체들은 언제 또 미국발 '시한폭탄'이 떨어질지 조마조마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 주력제품인 유정용 강관 등 강관류 쿼터는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 정도"라고 표현했다.

넥스틸 관계자는 "2014년만 해도 유가가 많이 올라서 잘 버텼지만, 2015년 들어 유가가 급락하면서 대부분 업체의 수주가 확 줄어들었다"며 "일부 생산라인은 잠시 세워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강관 제조업체 스틸플라워의 상황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이 업체는 지난 2011년 2억불 '수출탑' 기록, 2013년 정부 지정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된 유망 기업이었다. 스틸플라워는 포항, 순천, 김포, 진영에서 공장을 운영했지만 이날 찾은 포항공장은 '올스톱'된 상태였다. 미국의 강관 반덤핑 관세에 휘청인데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에 수출하던 유정관 수요도 급감한 탓이다. 강관이 가득 쌓였을 법한 드넓은 공장 앞마당은 텅빈 채 인적마저 없었다.

철강단지 입주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쌓였던 (스틸플라워 강관) 재고가 최근에야 다 팔렸다"면서 "예전에는 하루에만 어림잡아 100여대의 트럭이 공장을 들락날락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한 대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 이탈에 중소 협력업체 휘청

전기.전자업종과 기계.자동차 부품업종을 주력으로 영위해오던 구미시도 몇 년 전부터 활기를 잃어버렸다. 지역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던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베트남, 파주 등으로 생산거점을 옮기면서부터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현지에 공장을 짓고 제품 양산을 맡기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을 계기로 파주로 생산거점을 이전하면서 구미시에 대한 투자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실제 2013년 367억달러에 달하던 구미산업단지 수출실적은 4년 만인 지난해 283억달러로 급감했다.

구미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현재 구미산업단지 1~4단지 입주가 완료된 상태이지만 대기업이 나가면 다른 대기업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으로 다 채워지고 있다"면서 "새로 분양을 시작한 5단지는 분할 분양을 해도 들어오겠다는 업체가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기업투자가 전무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무너지는 제조업, 창원을 덮친 공포

창원국가산업단지는 지난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의해 조성된 대한민국 대표 기계산업단지다. 2015년 기준 국가경제 기여도가 수출액 대비 8.4%, 경남의 63.7%, 창원시의 89.3%를 차지하고 있는 등 지역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한 축인 조선업 수주가 감소하고, 전통적인 기계제조업이 높은 인건비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4월 창원 산단의 분위기는 떨어지는 벚꽃의 처량함에 비길만했다.

초고압변압기와 차단기 등을 전력계통 완성품을 제조하는 대기업 A사 관계자들은 "흉흉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조선업과는 무관한 A사조차도 3년 연속 매출이 늘지 않고 있다"며 "대기업인 A사가 이런 상황이라면 창원산단 내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뻔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얼마 전 창원 향토기업인 환웅그룹이 부도가 났다. A사 관계자들은 "이곳에선 꽤 규모가 있는 기업인데 이 기업이 부도가 난 이후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웅그룹은 함안 팬코리아중공업, 창원 환웅전기.환웅정공 등으로 알려진 기업이다. 현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코리아중공업은 지난달 주거래은행에서 돌아온 어음을 최종 결재하지 못했다. 팬코리아가 부도처리되면서 상호지급보증을 했던 환웅정공도 어려움에 처했고, 앞서 환웅전기도 몇년 전부터 경영난을 겪어왔다.

그렇다고 현 추세에 따라 기존 공장의 혁신을 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창원시는 현재 지금의 창원산단에 6개의 산단을 추가로 구성, 기존 업종이 아닌 소위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효율성을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접목시킬 방법은 결국 '스마트팩토리'라고 부르는 로봇생산시스템인데, 그래 봐야 대기업 물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2년 창업했다는 이엠텍 김도형 대표는 "이엠텍은 기계가공전문기업으로 조선기자재.밸브.농기계부품, 중전기부품을 생산한다. 두산.효성중공업 등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다"며 "현 흐름에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투자금을 투입해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적 브랜드를 가지고 판매하는 시스템이 아닌 협력업체 납품업체는 효율성 측면에서 이익이 남지 않는다. 결국 대규모의 투자가 정책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길어지는 조선업 침체에 기업들 줄도산

조선업 불황이 깊어지면서 대불산단이 위치한 영암의 빛도 사그라졌다. 영암은 현대삼호중공업과 대한조선으로부터 물량을 받아온다. 이들이 수주해오는 물량이 반토막 이하로 줄면서 대불산단에 흘러드는 물량도 자연히 줄었다.

대불산단 입주기업들은 조선 협력사 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인 기자재 위주가 아니라 대부분 블록 조립 기업이다. 현대삼호나 대한조선이 철판 등 재료까지 모두 조달해주면 이를 잘라붙이는 단순 임가공 작업이다. 사실상 일감에 따라 사람이 붙었다 흩어지는 '사람 장사'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물량팀'이라고 부른다. 대기업 물량을 기다리다 버티지 못하고 도산한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산단공 관계자는 "울산은 조선.자동차.플랜트.정유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산업 경기에 따라 채워주는 게 있다. 조선이 안 좋을 때 S-OIL이 2조원 넘게 시설투자를 했다. 또 조선이 안 좋을 때 플랜트로 인력을 재배치 할 수 있어 인력 유출 위험이 적다. 영암은 조선이 무너지면 대체가능한 사업이 없다.
'일자리-거주-소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산업군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학연은 머나먼 현실이다.
산단공 관계자는 "창원의 경우 창원대에 기계 관련 학과가 많아 졸업 후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 것과 비교해 전남권 대학에서 조선을 취급하는 학과조차 없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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