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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 식당도 마트도 문닫은 금오테크노밸리.. 팔리는 건 복권뿐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0 17:09

수정 2018.04.10 17:09

【 포항.구미.창원.영암=특별취재팀】 "이 자리에서만 16년 동안 장사하는데 복권 때문에나 계속 있지, 아니면 옛적에 접었죠. 그래도 복권 팔면 손님들이 찾아오기라도 하니까. 이 주변은 상권이 완전히 죽었어요."

지난달 28일 구미시. 기업들의 연구개발과 지원시설을 한데 모은 금오테크노밸리 인근 편의점 점주에게 손님들이 많이 오는지를 묻자 대뜸 한숨부터 쉬며 이같이 답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15분여간 편의점 안에는 선 채로 로또 번호를 적고 있는 한 사람 외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골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손님을 보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어 오후 4시께 방문한 4산업단지 인근 거리는 한산했다. 인적 대신 거리 곳곳엔 임대 딱지를 붙인 상가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원룸 건물 기둥에는 '수수료 없음' '당일 입주 가능' '모든 조건 맞춰줌' 이라는 스티커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인근 편의점 점주 곽모씨는 "지난해에만 주변 대형마트 3곳이 다 문을 닫았다. 바로 옆 음식점이 있던 건물도 8개월 넘게 비워져 있다. 주변 회사들도 일거리가 없으니 회식도 안하고, 야근도 안하는 분위기"라면서 "인건비가 올라가버리니 문을 닫는 공장도 생겼다. 당장 이 편의점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누가 돈 주고 직원을 쓰겠나"라고 토로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문자 하나를 보여줬다. 부족한 월급을 충당하기 위해서인지 일을 안하는 몇 시간만이라도 대타로 편의점 근무를 하겠다는 문자까지 온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태국인과 중국인 등 산단에서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모여사는 상모.사곡동 인근 원룸촌도 공실이 넘쳐났다. 양꼬치, 중국요리 등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과 외국인 미용실 등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곳곳에 덕지덕지 임대 딱지들이 텅빈 가게에만 덜렁 붙어 있었다. 산단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한 최근 2~3년간 외국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안정적인 경기상황을 보여왔던 포항 지역경제도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포항주민 이모씨는 "트럭 운전기사들도 옮길 짐이 없어서 하루에 한 건 정도 일을 받으면 다행이라는 분위기"라면서 "월마다 몇백만원씩 하는 트럭 할부금도 못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포항공대, 한동대 등을 졸업한 인재들도 모두 서울로 올라가는 추세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박모씨는 "예전에는 굳이 서울을 안 가도 잘 먹고살 수 있었는데 요즘은 공부 좀 한다 하면 다 서울을 가려 한다"며 "지역을 살리려면 지방대학 경쟁력을 먼저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중소업체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더 어려워졌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성토했다.

독일 합작기업 EWS코리아의 이종판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그 부담은 비단 16.4% 인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4대 보험에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느끼는 체감 부담률은 32%까지 상승한다는 분석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질 낮은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청춘도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은 돈은 적게 주고 일은 많이 시킨다는 인식에서다.
영암 산단공 대불지사 관계자도 "일단 (입주업체의) 월급 수준이 낮다. 초봉이 2600만원 선이다.
거의 최저임금 수준인데 최저임금이 점차 오르면서 이런 힘든 일보다는 편의점, 카페 등에서 알바를 택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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