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설연휴 볼만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언젠가 본 것 같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한

김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8 00:30

수정 2018.02.18 00:46

이병헌·박정민·윤여정 3인의 명품 연기
상처와 치유… 가족을 돌아보게 만든다 
[설연휴 볼만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언젠가 본 것 같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한


“왜 그랬어요, 나도 그때는 어렸다고요. 엄마도 아버지도 절대 용서 못해요 . 캐나다로 떠날 거예요. 여기는 너무 X같애요. 진짜 X같애”
백혈병 판정을 받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엄마 인숙(윤여정)의 병실. 주인공 조하(이병헌)는 막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원망을 쏟아낸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한때 WBC 웰터급 동양챔피언을 지냈지만 은퇴 후 몸 눕힐 방 한 칸 없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하(이병헌)가 17년 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린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 인숙(윤여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숙식 해결을 위해 떠밀리듯 들어가게 된 엄마 집. 조하는 듣도 보도 못했던 동생 진태(박정민)를 만나게 된다.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진태와 복싱만 알고 살던 조하.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다른 두 형제는 불편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소소한 일상을 거듭하던 둘은 어느새 가까워지고, 동생 진태의 피아노 실력을 눈치 챈 조하가 콩쿠르 과정을 돕게 되면서 형제는 극적인 화해를 맺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하가 엄마의 불치병 사실을 알게 되고, 병실을 찾아와 위로 대신 원망을 쏟아낸다.


결국 조하가 캐나다로 떠나기로 마음먹으며 이들의 관계는 끝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공항에서 우연히 동생 진태의 연주회 소식을 듣고는 발길을 돌린다. 조하는 병실의 엄마를 휠체어에 싣고 진태의 연주회를 찾는다.

[설연휴 볼만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언젠가 본 것 같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한


가족의 의미와 상처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는 이 영화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족의 설정, 이병헌과 박정민의 맛깔스런 ‘케미’, 윤여정의 애끓는 연기 덕에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어느새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가족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면 마치 언젠가 본 듯한 느낌. 그리고 앞이 예상되는 스토리 전개과정이랄까?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두 형제의 심리적 거리에서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영화 ‘레인 맨’을 생각해 낼 수도 있다. 또 진태가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을 선보이는 과정에선 엄정화가 주연했던 ‘호로비츠를 위하여’도 떠오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언제가, 어디선가 보았던 느낌이 든다고 이 영화가 전혀 식상하지는 않다. 주하와 진태라 두 캐릭터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억지스럽지 않고, 강제로 눈물을 쥐어짜는 불편함도 느끼기 힘들다.

조하가 품은 상처를 알고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관객은 이야기의 설득력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병상의 엄마에게 조하가 내뱉은 치기어린 원망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느껴진다. 혼자 남겨진 채 폭력을 견디면서 어른이 된 조하에게 17년 만에 만난 엄마를 죽음으로 다시 떠나보내는 것이야말로 또 다시 버림받는 기분일 것이다.

조하는 그토록 바랐건만 다시 만난 엄마에게서 치유 받지 못한다.

[설연휴 볼만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언젠가 본 것 같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한

하지만 원망스러운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 엔딩신. 장례식장에서 없어진 동생 진태를 찾아 나선 조하가 거리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진태를 데리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가 이제 더 이상 상처에 갇히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앞서 걷던 조하와 뒤를 따르는 진태. 둘은 어느새 횡단보도에 멈춰서고, 조하는 진태의 손을 조용하고 단오하게 잡는다. 그리고 그 둘은 120분 러닝타임 영화에서 처음으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맞잡은 조하와 진태의 두 손은 흡사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동생 찰리(탐 크루즈)에세 했던 말 “charlie, you are my main man(찰리, 넌 내개 가장 소종한 사람이야)”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묻는다. 상처는 누군가의 위로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치유된다고.

가족의 의미와 함께 먹먹한 위안을 선물해주는 이 영화는 설 연휴를 맞아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그것만이 내 세상’은 개봉 한 달이 지난 현재 누적 관객 332만6000명을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5위로 역주행하고 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fnSurvey